아주경제 정광연 기자 =김재홍 방통통신위원회 부위원장과 고삼석 상임위원이 EBS 감사선임 관련,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방통위가 다수결 원칙만 강조하고 합의제 의사결정 규범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면 유감을 나타냈다.
김 부위원장과 고 상임위원은 방통위가 여당측 임명 위원들만으로 중요한 결정을 강행하고 있으며 이는 승자독식이라는 반민주적 논리라고 비판하고 신속한 변화를 요구했다.
다수결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17,8세기식 사고입니다. 19세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부른 다수의 횡포와 독재를 경험한 이후 현대 민주주의는 토론과 협상에 의한 합의제를 의사결정 방법으로서 더 우위에 둬 왔습니다.
다수 의견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소수 의견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설사 차선책으로 다수의사 결정방식을 선택한다고 할 때도 마지막으로 소수자의 비토권은 인정돼야 합니다.
생명권이나 언론자유, 주거, 교육과 같은 치명적인 기본권에 관해서는 소수자가 비토권을 행사할 경우 다수결로도 강행할 수 없게 하는 규범이 민주헌정에 구현된 것은 오래된 일입니다. 미국의 헌법과 다양한 법제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같이 ‘합의제’ 원칙에 따라 운영하도록 요구돼 온 기관은 단순 다수제가 조직운영의 기본이 돼서는 안 됩니다. 지금 방통위는 ‘다수결 원칙’만 횡행하고 있을 뿐 ‘합의제 의사결정 규범’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정부 여당 측이 추천 임명한 위원들만으로 중요한 결정을 강행한 일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는 자칫 정치권의 ‘승자독식’이라는 극단적으로 반민주적인 논리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끄러운 위원회 운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승자독식의 사고방식이 방통위와 같은 문화적 다양성과 합의제 민주주의를 생명으로 여겨야 할 기관에 압축 통용되는 불행한 일은 고쳐야 합니다.
제3기 방송통신위원회 출범 이후 지금까지 야권 추천 위원들은 원만한 위원회 운영을 위해서 합의제 원칙에 반하는 의사결정과 조직운영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보와 협조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합의제 원칙의 훼손이 용인하기 어려운 수위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해 원칙 없는 공영방송 이사진 구성, 올해 초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는 방송평가규칙의 개악, MBC 녹취록 사태에 대한 자료요구와 진상파악 등과 같은 공영방송 현안에 대한 방관과 방치 등 다수결 원칙을 무기삼아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다수에 의한 일방적 운영이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이에 합의제 운영이라는 기본을 다시 세우고,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체성과 위상 확립을 위한 풍토 개선을 안팎에 호소합니다. 저희는 이와 관련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자 합니다.
첫째, 모든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특히 안건에 대한 사전조율 등 원활한 위원회 운영을 명분으로 유지되고 있는 위원 간담회(Tea Time)는 ‘최소주의 원칙’ 하에 운영돼야 할 것입니다.
즉,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최소한의 안건을 제외하고 모든 안건은 전체회의에서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결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합니다. 저희는 상대방의 반대 발언을 순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만 이용돼 온 위원 간담회에 참석하는 것을 재검토하겠습니다.
둘째, 위원장을 비롯한 위원들이 위원회를 ‘대표’해서 외부회의에 참석할 경우, 관련 내용을 위원 간 공유할 것을 요구합니다. 국무회의는 물론, 비공개로 진행되는 차관회의, 그리고 부처 간 협의회와 국회 상임위 소위원회의 등의 결과는 모든 위원들이 공유하고 검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셋째, 방통위 사무처 운영에 있어서도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되도록 해야 합니다.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하 방통위설치법)’은 위원장이 위원회 소관 사무를 ‘통할’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그것이 합의제 운영원칙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위원들을 ‘배제’하고 ‘독단적’으로 운영하라는 취지가 아닙니다. 특히, 현재 타 기관과 달리 운영되고 있는 인사위원회 운영방식은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합니다. 인사위원장은 어느 기관이나 기관장의 차순위자가 맡아 인사고과 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의견 수렴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데도, 방통위의 경우 이런 보편적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넷째, 합의제 원칙에 따라 위원회가 운영되도록 하고, 법이 규정한 위원의 권한을 보장해 위원에게 부여된 책무를 다 할 수 있도록 ‘방송법’, ‘방통위설치법’의 미비점들을 보완하고 불합리한 규정은 개정하는 작업에 곧바로 착수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