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정로칼럼] 부당해고와 노동시장의 표지판

2016-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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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익 국제공인노무사사무소 공인노무사]


사십대 초반의 A차장은 작년 가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연매출액 5000억원 정도의 중견 제조업체에 다니던 그는 회사가 경영사정이 어렵고 인사고과가 낮다는 이유로 과장급 이상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통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었다. 회사의 부당한 처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제기했다. 회사가 일괄 사직서를 받아 선별수리한 것도 허용될 수 없는 것이지만, 사직서 수리의 근거로 삼은 인사고과가 관련 규정에서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임을 알게됐다. 또 회사 눈밖에 난 일부 근로자들을 내보내기 위해 자의적으로 고과평정을 한 정황이 드러났다. 노동위원회는 회사가 부당하게 해고한 것이라고 판정했지만, 그동안 그가 겪었을 경제적 어려움과 심리적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가늠하기 힘들다.

지난 연말 고용노동부가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이른바 일반해고 가이드북 초안을 발표한 뒤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하면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는 더 좋은 직장을 구한다는 보장이 없는 대부분의 경우 일자리를 상실해 경제적 위험에 직면한다. 그러므로 근로기준법은 근로의 기회를 보호하기 위해 제23조에서 ‘정당한 이유’가 없는 해고를 제한하고 있다. 근로자에 대한 해고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 법은 더 이상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지 않다.
해고의 정당한 이유에 대해 법에 그 내용을 구체화하고 해고의 모든 사유들을 정해 두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설령 규정하더라도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갖기도 어렵다. 그러므로 사용자의 해고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는 법원이나 노동위원회를 통해 사후적으로 확정되게 된다. 징계해고나 일반해고라는 용어도 법에는 없지만 법원은 근로자의 비위행위 등 기업질서 위반을 이유로 한 해고를 징계해고라 하고, 업무능력부족이나 성과부진 등을 이유로 하는 해고를 일반해고라고 하고 있다.

문제는 근로자와 기업 모두 법원의 결정이 있기 전까지는 일반해고가 언제 어떤 경우에 가능한지 또는 허용되지 않는지를 알기 어려운 실정이라는 점이다. 한 마디로 예측가능성이 매우 낮고, 노사의 인식 차이도 크다. 기업은 현실적으로 일반해고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하는데 비해 근로자는 해고의 위험에 상시 노출돼 있다. 저성과자 관리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일반해고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다행스럽게도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가이드북 초안은 업무능력부족이나 성과부진이 객관성, 중대성, 지속성을 갖고 있어야 해고사유가 될 수 있다는 그동안의 법원 판례를 체계적으로 제시했다. 참석했던 전문가들도 전반적인 내용에 별 문제가 없지만 서술 방식 등에서 근로자의 직장 보호 관점을 우선해야 한다는데 대체로 인식을 같이했다. 특히 가이드북 초안이 인사평가의 기준과 절차 준수 등 객관적이고 공정한 인사평가를 강조하고 해고에 앞서 교육훈련이나 배치전환 등을 통해 근로자의 능력과 성과를 향상시키는 해고회피 노력을 다하도록 사용자의 의무를 명확히 하고 있는 점은 주목할만 하다.

정부는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통해 법과 판례에 따라 노동시장에서 표지판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가이드북이 마련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이드북이 근로자가 억울하게 해고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고 정당한 해고로 인정될 수 있는 사유와 절차를 안내한다면 부당해고에 따르는 경제적·시간적·심리적 비용을 줄이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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