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人100言]정세영 “내 차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2016-01-1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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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의 기적을 이끌어낸 기업인들의 ‘이 한마디’ (13)

정세영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전 현대자동차 명예회장)[사진=HDC현대산업개발 제공]

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소수의 특권층을 위한 자동차가 아니라, 한국의 대다수 중산층을 위한 자동차 고유 모델을 개발하고 싶다.”

한국 최초의 국산 승용차 포니(Pony)를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 이탈리아 이탈디자인 회장은, 포니 탄생의 주역 정세영 HDC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프로젝트가 어려움에 부딛칠 때마다 이 말을 들려줬다고 회상했다.

아산(峨山)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의 넷째 동생인 그는 1928년 강원 통천에서 태어나 고려대를 졸업한 후, 현대건설에 입사했다가 1967년 현대자동차 설립과 함께 사장 자리에 오르며 32년 자동차 외길 인생을 시작했다.

현대차는 1972년 회사의 운명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설립 당시부터 기술제휴를 맺고 있던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와 결별하고, 고유모델 개발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

이를 앞장서 추진한 인물이 정세영 명예회장이다. 글로벌 자동차업체와 손잡고 자동차를 조립생산하면 수입도 좋고 위험도 적었다. 반면 그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해 독자모델 개발은 불가능하다. 특히 현대는 내수뿐 아니라 수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

“죽든 살든 고유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수출이 가능하다. 반드시 만들고 말겠다”고 결심한 정세영 명예회장은 이러한 뜻을 형님에게 말했고, 아산은 대찬성했다.

그러나 실무진은 강하게 반대했다. “포드의 코티나 조립도면조차 제대로 카피하지 못하는 실력으로 고유모델 개발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정세영 명예회장은 “고유모델을 안 만들면 우린 죽어. 반대할 사람은 비켜서서 구경이나 하라”며 일축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현대차의 미래를 좌우할 프로젝트의 디자인을 당시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던 디자이너 주지아로에 맡겼다.

당시 30대의 젊은이였던 그에게서 정세영 명예회장은 시대를 앞서가는 재능을 읽었다. 국민소득 500달러 시절, 정세영 명예회장은 주지아로에게 거금 120만 달러를 내는 대가로 한국 디자이너 10명을 공동 작업에 참여시켜 기술을 배우게 했다.

그의 도전정신은 1974년 한국의 첫 고유모델 자동차인 ‘포니’를 낳았다. 포니의 탄생은 전세계 자동차업계를 놀라게 했다.

처음 출시됐을 당시 포니의 가격은 228만원. 변두리 아파트 한채 값이었지만, 당시 인기를 누리던 기아자동차의 ‘브리사’를 제치고 내수시장을 휩쓸었다.

정세영 명예회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해외수출에 박차를 가했다. 해외를 누비는 포니의 성공을 지켜본 글로벌 자동차 업계는 그에게 ‘포니 정(Pony Chung)’이라는 애칭을 선사했다.

1987년 현대차 회장에 취임한 그는 “품질은 정성이다. 품질이 제일 좋으면 세계에서 제일 좋은 자동차가 된다”고 강조하고, 독자 엔진을 개발하며 해외시장의 문을 계속 두드렸다.

열악한 환경에서 현대차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자동차 회사로 성장시키는 것을 최고의 보람으로 생각한 정세영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2005년 5월21일 “돌아보건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길. 그 길이 곧았다면 앞으로도 나는 곧은 길을 걸을 것이요, 그 길을 달리는 내 차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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