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시청자는 ‘응답하라 1988’에 전에 없던 아량을 베풀었다. 지난 1, 2일 제작 지연을 이유로 결방했을 때도 “더 좋은 작품을 위해서겠지”라고 웃어 넘길 정도였으니까.
대중이 ‘응답하라 1988’에 기대했던 것은 주말 저녁 가족·친구들끼리 모여 앉아 따뜻한 정이 넘쳤던 예전을 회상하고, “덕선 남편은 당연히 정환이지” “우리 택이도 만만치 않다”하며 티격태격하는 정도의 재미였다. 그래서 굵직한 기둥 줄거리 없이 단편적인 에피소드를 게으르게 나열하는 구성 역시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작가주의적 걸작을 만들지 않아도 좋다”는 대중의 아량을 악용했다.
영화 ‘타짜’를 패러디해 어른들이 고스톱 치는 장면으로 수 십 분을 때우는 게으름은 재미라도 있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 보여주기 위해 단발성으로 끝난 성보라와 쌍문동 오인방의 과외보다 더 큰 슬픔은 강박적으로 반전에 목을 매는 제작진 때문에 교복 이름표에서 제 성(姓)을 지워야만 했던 선우(고경표)다. 선우의 성씨는 성보라와의 동성동본 결혼을 위해 작품 말미에야 ‘성’으로 결정이 났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불필요한 노력은 작품 전체를 위협했다. 반전에 눈이 먼 제작진에게 개연성은 뒷전이었다. 분노는 시청자의 몫이 됐다. 시청률 게시판은 따스했던 시간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 대신 덕선의 남편으로 유력했던 정환이의 미미해진 존재감, 택이를 남편으로 그리며 개연성을 잃은 극 전개에 대한 지적으로 들끓고 있다. 제작진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유일한 감정선이었던 정환이의 애끓은 첫사랑은 가벼운 농담으로 끝내며 새로운 것을 제대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스스로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