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채명석 기자 = 오는 5일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정의선 부회장의 어머니인 고 이정화 여사가 세상을 떠난 지 5년이 된다.
평범한 실향민 집안의 셋째 딸로 자란 이 여사는 서울 숙명여고를 졸업한 뒤 정 회장과 연애 결혼해 범 현대가로 들어온 그는 손위 동서인 이양자씨가 1991년 세상을 떠난 뒤 18년간 현대가 맏며느리 역할을 도맡아왔다.
특히, 이 여사는 젊은 시절 다른 형제와 달리 시아버지(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눈에서 멀어져 있던 정 회장이 힘든 기업인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지키며, 그의 성공 디딤돌이 됐다. 또한 1990년대 후반 형제간 갈등으로 집안이 뿔뿔이 흩어질 뻔한 위기를 겪기도 했으나 이 여사가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며 집안의 중심을 다져 나갔다. 정씨 일가가 지금까지 우애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그가 이뤄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소와 근면함을 한 평생 실천했던 이 여사는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아침식사를 챙겼고, 19년간 시어머니 병 수발도 도맡았다. 친척 경조사는 잊지 않고 챙겼고, 신문배달원이나 미화원들에게도 명절날 선물을 건네는 자애로운 어머니였다.
이 여사는 자식들에게 ‘겸양’도 강조했다. 자식들에게 가장 많이 들려준 속담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였다고 한다. 현대차그룹의 한 임원은 “이 여사는 자녀들에게 귀감이 되도록 겸양의 미덕을 강조하고 스스로 이를 실천하셨던 분”이라고 전했다.
현대차 그룹 회장의 부인이었지만 계열사 주식을 단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았던 이 여사를 위해 정 회장은 2003년 그룹 계열사인 해비치리조트의 지분을 선물해 대주주로서 고문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직함이었을 뿐 그는 ‘내조’에만 주력했다.
자식, 그 가운데에서도 맏아들이자 장손인 정의선 부회장에 대한 애정은 컸다. 언젠가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현대차 그룹을 이끌어야 할 숙명을 안은 아들에 대한 안쓰러움과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공식 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던 이 여사는 2008년 당시 기아차 사장이었던 정의선 부회장이 자신이 추진해왔던 ‘디자인 경영’의 첫 작품인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모하비 신차발표회장에 참석해 아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했다. 발표회장에서 정 부회장은 “어머님,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한평생 헌신해온 그의 존재감은 말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겁고 컸다.
오는 4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 자택에서 이 여사의 5주기 제사가 있을 예정이며, 범 현대가 친척들도 자리를 함께 할 것으로 보인다.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았던 집안은 셋째딸 정윤이 현대해비치호텔앤드리조트 전무 이혼으로 흔들림이 있었다. 사업 면에서도 경쟁자들의 견제로 어려운 싸움을 지속하고 있으며,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 인수에 따른 여운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 회장이나 정의선 부회장 등 가족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여사를 그리워 할 것이다. 많은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잡아주며 힘을 북돋워 준 그의 존재가 지금처럼 아쉬울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