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인 줄 알았던 ‘디셈버’는 공개 직후 갖은 혹평을 받으며 미운 오리 새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무려 3시간 40분에 달하는 공연시간을 채우는 것은 음악을 하는 청년이 운동권 여학생과 사랑에 빠졌으나 여성은 사고로 숨졌고,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 사랑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는 단순하고 진부한 줄거리뿐. 김광석의 노래를 수록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떨쳐내지 못해 억지로 노랫말에 에피소드를 짜 맞췄다는 혹독한 평가가 갓 태어난 창작 뮤지컬에 쏟아졌다.
신입생에게 차인 ‘스물아홉 살’ 복학생이 ‘서른 즈음에’를 코믹적 요소를 섞어 부르고, 삶이 고되고 힘들 때마다 작은 위로가 됐던 ‘일어나’가 화장실 변기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하숙집 친구를 향한 외침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이 불러온 애통이었다.
헌데 그저 비판 받아 마땅하기만 한가, 달리 생각해 볼 여지는 없는가? 무심하고 덤덤하게 우리의 삶을 그려 냈던 김광석의 노래가 유쾌하고 시시콜콜한 에피소드와 버무려지는 것이 김광석을 음미하는 새로운 방법이 될 수는 없는지 묻고 싶다. 김광석의 노래는 꼭 처절하고 절절하게 감상해야 하는 것인지. 어쩌면 애초부터 장진은 원곡의 느낌 그대로를 작품에 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애절한 목소리로 정성껏 노래하는 김준수의 보컬은 아직은 덜 성숙한 그의 연기력을 채운다. 조연들이 선보이는 명연기는 김준수 이름 석 자만 보고 공연장을 찾은 관객에게 예기치 못한 기분 좋은 선물이 된다. 특히 여주인공을 맡은 오소연은 단연 히로인이라 불릴 만하다.
첫술에 배부르랴. ‘디셈버’는 제 살을 잘라내며 공연시간을 줄이는 등 세간의 채찍질을 수용하며 자신을 가다듬기에 여념이 없다. 헐겁게 짜인 이야기와 음악의 구멍을 장진 감독이 스크린에서 쌓은 연륜으로 단단히 조이고, 김준수가 좀 더 원숙한 감정연기를 선보인다면 ‘디셈버’는 매년 우리의 12월을 지켜주는 '습관 같은' 뮤지컬이 될 수 있다. 낙엽이 떨어질 때쯤이면 어김없이 관객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이는 ‘베르테르’처럼.
한국판 ‘맘마미아’(아바의 노래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를 꿈꾸는 ‘디셈버’, 미운 오리 새끼를 넘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