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한지연 기자 ="지나가는 사람 열 중 아홉은 중국인이다."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동은 국내 최대의 중국인 마을로 불린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중국 특유의 쾌쾌한 향신료 냄새가 코를 자극한다. 전봇대마다 붙은 전단지, 붉은색 간판으로 뒤덮인 하늘, 중국어와 북한 말씨가 뒤섞인 노점상 주인 등 지난 7일 찾은 중앙시장 거리 곳곳에는 중국 냄새가 깊게 배어있었다.
◆가리봉동에서 대림동을 지나 신림으로, 확장하는 소중국
대림동을 구성하는 중국 이주민의 대다수는 지린성(吉林省)과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출신의 조선족이다. 한족도 일부 거주하고 있다.
국내 체류 중국인 수가 150만명을 넘어서면서 중국인 마을은 대림동을 중심으로 구로구 가리봉동, 금천구 가산동, 관악구 신림동, 광진구 자양동까지 확대되고 있다.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본래 가리봉동에서 태동했다.
가리봉동은 1960년대부터 80년대에 걸쳐 주로 구로공단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벌집촌'이 자리 잡았던 곳이다. 30년~40년된 오래된 주택이 밀집된 이 지역은 아직도 욕실 없는 방이 많아 공동 화장실을 쓰는 곳이 많다.
1980년대 후반 국내 수출부진과 임금상승 등으로 구로공단에 있던 업체들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비어있던 가리봉동 벌집촌을 중심으로 극빈층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이후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들이 정착하면서 조선족 밀집 거주지역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낮은 임대료와 기존 가리봉동에 형성됐던 건설 일용직 시장, 발달된 교통 등이 주요 이유였다.
최근에는 조선족 거주지역의 중심축이 가리봉동에서 대림동으로 이동한 상태다. 과거 가리봉동 재개발 소식으로 이 지역에 머물던 이주민들이 대림동과 신림동 등 주변지역으로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대림동에 집중하는 이유는 근처에 2ㆍ7호선 교통이 인접해있어 이동이 편리하고, 기존 구로공단 등 공단지역이 많아 일자리를 얻는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또 도심 외곽 지역이라 임대료가 저렴한 노후 연립주택도 많다. 주로 보증금 100만원에서 월세 10만~20만원짜리 다세대 주택인데, 이마저도 한 방에서 2~3명이 세 들어 사는 경우가 많다.
◆대림동 상권의 90%는 중국에 넘어가
"가리봉동과 대림동을 잇는 대림동 중앙시장 상권은 이미 90%가 조선족에게 넘어갔다." 20년째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김모(75)씨의 말이다.
이 일대에서는 한국 식당을 찾아보기가 되레 어렵다. 5년째 대림동에서 분식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57)는 "중국 사람들이 떡볶이나 순대, 김밥 등 분식을 먹질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시작했다"며 "하루 1~2팀 오는 손님 대부분이 이 지역을 구경나온 한국인"이라고 했다.
실제 200m 길게 이어진 중앙시장에는 한자와 한글을 병기한 음식점, 환전소, 여행안내소, 전화방, 부동산, 직업소개소, 양꼬치 전문점 등이 가득했다.
3년째 이 지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고 있는 안모(40)씨는 "중앙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80~90%가 조선족"이라며 "화장품가게, 미용실, 밥집 등 안 하는게 없다"고 했다. 이어 "이 거리에서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은 5개 정도"라고 말했다.
근처 치킨집 주인 박모(46)씨는 "5년 전부터 조선족 상인이 부쩍 늘었다"며 "가게주인과 점원, 고객이 전부 중국인이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막상 사업을 시작하려해도 적응 못하고 하나 둘씩 떠나간다"고 했다.
대림동은 조선족 거주지일 뿐 아니라 집결지이기도 하다. 매주 금ㆍ토ㆍ일 저녁만 되면 전국에 흩어져있던 중국 동포들이 지하철을 타고 대림동으로 몰린다.
대림역에서 3년째 잡화상을 하고 있는 권모(58)씨는 "토요일이나 공휴일이면 수도권은 물론 전국 조선족이 중앙시장으로 몰려온다"며 "중국 현지에서도 '대림동 중앙시장'이라고 하면 다 알 정도로 명물"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예 이주하기 전에 중국 쪽 관리자들이 '2호선 대림역으로 가면 일자리도 얻고 동포들도 만날수 있다'고 알려준다"고 했다.
과일장사 주인 한모(49)씨는 "주말만 되면 술에 흥건히 취한 조선족들이 몰려다니면서 막무가내로 과일을 집어먹어 장사하기 겁난다"며 "아예 그날은 오후 9시 전에 일찍 문을 닫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