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을 떠나신 뒤에도 한국 경제에 애정을 보이며 우리 경제의 갈 길에 방향타 역할을 해주셨습니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불린 경제개발을 이끈 선배는 한국 경제에서 가장 어렵던 시기를 극복한 경제발전 모델의 입안자로 기억됩니다. 주말마다 허허벌판이던 잠실 건설현장을 찾아 소규모 주택공급 정책을 강조한 것도 국내 경기를 살리려는 노력이었습니다.
항상 국가의 미래를 생각한 고인은 노년에도 자기 관리와 공부를 멈추지 않으며 후학 양성에 매진한 점도 가슴 깊이 새깁니다. 학구적인 자세로 합리적인 정책을 펴고 국제사회를 설득하며 정책을 적용하는 등 탁월한 리더십은 후배들의 귀감이었습니다.
고인을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때 포럼에서 뵙고 지난 1월에도 만났습니다. 부총리 취임 후 한 번 점심을 모시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에 나오다 넘어져 뵙지 못한 부분이 못내 아쉽기만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1976년 경제기획원 사무관으로서 근무할 당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셨습니다. 사무관으로서 부총리를 뵐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경제학자로서 장관으로서 항상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1976년 제4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1977~1981년) 작성에 고 김재익 국장과 참여할 당시 작업 장소(KAIST 영빈관)에 몸소 오셔서 격려해주셨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선배는 지병과 노환 속에서도 최근까지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 등을 맡으면서 나라의 갈 길에 반듯한 처방을 더해 주시며 평생 온몸을 나라를 위해 연소(燃燒)하신 느낌입니다.
이제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창조형·선도형 경제를 통해 제2의 경제부흥을 힘차게 이끌겠습니다. 떠나시는 남 선배님, 영면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