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패트롤> 김정일과 '함포고복(含哺鼓腹)'

2011-12-23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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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무더위가 한창이던 1994년 7월의 어느날, 하굣길에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더위를 달래줄 음료수를 사러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텔레비전을 통해 북한 주민들이 오열하는 모습을 봤다.

독재자를 떠나보내며 그토록 슬퍼하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들의 눈물에서 진심을 엿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7년이 흐른 2011년 12월 김일성 주석의 아들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세상을 떠났다.

마치 시간을 되돌려놓은 듯 텔레비전 속 북한 주민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의 눈물에서는 진정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왜일까.

김일성이 통치하던 북한은 경제가 성장기에 있었고 주민들이 굶주림으로 괴로워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반면 김정일 통치 기간에는 극심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했고, 화폐개혁 등 북한 정부가 추진한 일련의 정책들도 모두 실패했다.

두 지도자의 장례를 치르면서 주민들이 상반된 태도를 보인 가장 큰 이유는 삶의 질이 극단적으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중국의 요(堯) 임금이 다스리던 시절 백성들은 잘 먹고 배를 두드리며 천하가 태평하다고 즐거워했다.

태평성대를 뜻하는 '함포고복(含哺鼓腹)'의 유래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이 왕도(王道)에 대해 묻자 "백성들이 위로는 넉넉히 부모를 섬길 수 있고 아래로는 넉넉히 처자를 먹여 살릴 수 있으며 흉년이 들어도 죽음을 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답했다.

백성들이 끼니 걱정을 하지 않도록 하는 게 정치의 요체임을 간파했던 것이다. 지금이라고 그 이치가 달라졌을 리 없다.

45년이나 권좌를 지켰던 김일성이 17년을 통치한 김정일보다 북한 주민들로부터 후한 대접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고 있다. 내년에는 국회의원들을 뽑는 총선과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대선이 치러진다.

국민들의 삶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국내 경제도 본격적인 침체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족한 생활비 때문에 카드를 돌려막고, 급전을 빌리려고 사금융을 기웃거리는 국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떠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어하는 현 권력자나 새로운 권력자가 될 꿈에 부푼 이들 모두 '함포고복'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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