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동 위원장과 양치기 소년

2011-09-2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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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저축은행의 ‘덫’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지난 1월 삼화저축은행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리면서 야심차게 시작한 저축은행 구조조정 작업은 김 위원장과 금융당국에 대한 불신만 초래했다.

김 위원장이 취임 이후 꼭 해결해야 할 문제로 꼽았던 3가지(가계부채·외환건전성·저축은행) 중 중요도가 가장 낮은 것으로 평가했던 저축은행 문제에 오히려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이는 김 위원장 자신이 초래한 측면이 있다.

그는 지난 5월 불법대출 사건이 발생해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를 겪고 있던 제일저축은행에 대해 “유동성이 충분한 상태이며 필요하다면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

한 달이 지난 6월에는 한도초과 대출로 검찰 조사를 받은 프라임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며 유동성 지원이 충분히 이뤄지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들 저축은행은 지난 18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영업정지 대상 저축은행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경영 부실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진상 파악도 없이 망해 가는 저축은행을 지원하겠다는 나섰던 꼴이다.

또 경영 상태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도 지원 의사를 밝힌 것이라면 수많은 예금자와 투자자들을 기만한 것이다.

영업정지 대상이 발표된 뒤 고객들은 김 위원장과 금융당국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가 없다는 말만 믿고 돈을 맡겼다가 뒷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 대세를 이뤘다.

올 들어 영업정지를 시킨 저축은행만 16곳이다. 영업정지 조치를 발표할 때마다 시장은 “속았다”를 연발했다.

김 위원장과 금융당국은 영업정지를 당한 토마토저축은행 계열인 토마토2저축은행을 살리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김 위원장과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은 직접 해당 은행에 예금까지 맡기며 안정성을 강조했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사정에 가까운 설득을 해야 할 만큼 신뢰를 잃은 것이다.

김 위원장은 저축은행 구조조정 작업이 일단락됐으며 연내 추가 영업정지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시장에서는 이미 영업정지가 유력한 저축은행 명단까지 떠돌고 있는 상황이다.

김 위원장 취임 당시 회자됐던 ‘대책반장’이나 ‘해결사’라는 별명은 9개월이 지난 지금 ‘양치기 소년’으로 바뀌었다.

지난 20일 국감에 출석한 자리에서는 국회의원들로부터 “김 위원장이 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김 위원장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산적한 현안들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가계부채 문제의 경우 금융당국이 대출 옥죄기를 지시하자 은행들이 가계대출을 중단해버리는 ‘항명’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는 현 정권 들어 실시된 2번의 매각 입찰이 모두 유찰되면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 과정에서는 금융당국이 ‘변양호 신드롬’에 빠졌다는 비판까지 들어야 했다.

김 위원장이 고전을 겪는 모습을 바라보는 시선은 편하지 않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 등으로 글로벌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힘을 잃는다면 국내 금융시장은 물론 경제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이 불신을 극복하고 저축은행 구조조정은 물론 가계부채 연착륙과 외환건전성 확보 등 난제들을 해결해 나갈 수 있을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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