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 조용성 특파원) 중국에서 지난해 1월4일 개봉한 아바타. 전세계적인 흥행돌풍을 일으키며 한국에서도 흥행신기록을 세웠던 아바타였지만 중국에서는 개봉한지 18일만인 1월22일 3D상영관을 제외한 전 상영관에서 종영했다. 당시 현지언론은 중국에서 영화와 드라마 등을 관장하는 부서인 국가광전총국이 아바타가 관객의 인기를 얻지 못한 나머지 시장원리에 의해 조기종영시켰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바타의 상영을 촉구하는 네티즌들의 항의는 끝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댓글들은 삭제되기 일쑤였고, 이를 정확히 보도한 기사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아바타 조기종영의 배후로 중앙선전부를 지목했다. 교도통신은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아바타를 선전하는 기사와 평론을 금지하라는 통지를 관영매체에 내렸다고 보도한 것.
무엇이 진실인지는 밝혀진바 없지만 아바타의 상영금지는 중앙선전부 차원에서 내려졌으며, 또한 이 기관의 수장은 네티즌들의 무수한 비난을 받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게 됐다.
◆13억 인구 여론통제의 악역
사회주의식 언론통제가 남아있는 중국에서 중앙선전부장의 위치란 인민들로부터 낮은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자리다. 지방정부의 영도자나 국무원의 리더들은 민생을 얼마나 잘 보살폈는지, 얼마나 경제성장 성과를 냈는지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면 중앙선전부장은 얼마나 여론을 잘 통제했는지, 서방세계로부터 나오는 민감한 목소리들을 얼마나 잘 억제했는지에 대한 평가를 받는다. 그의 역할 자체가 인민들의 박수와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중국 건국 이래 역대 11명의 중앙선전부장 중 상무위원에 올라선 사람은 후야오방(胡耀邦)이 유일하다.
이미 9년을 중앙선전부 부부장으로 근무한데 이어 10년동안 중앙선전부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류윈산(劉雲山)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호감도 역시 낮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공산당 지도부입장에서 보면 그만큼 공산당의 방침에 맞춘 대내외 선전업무를 충실히 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그가 중앙선전부 핵심에서 19년여를 근무해왔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실제 그는 이 분야에서 중국 최고의 프로페셔널이라고 불리운다.
류윈산은 2002년에 정치국위원에 오른 후 두번째 5년임기를 채우고 있다. 내년에 있을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상무위원으로 올라갈 만한 충분한 자격요건을 갖춘 것. 또한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전문성과 연륜을 자랑하고 있는 만큼 현재 공산당 서열5위인 리창춘(李長春)을 대체할 가장 강한 후보로 지목된다.
하지만 그가 그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어쩔 수 없이 행했던 악역의 역할과, 그로 인한 인민들과 네티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로서는 부담이다. 때문에 류윈산이 내년 당대회에서 이데올로기 담당 상무위원에 올라선다면 시진핑(習近平)을 비롯한 제5세대 지도부가 정권초반 조직안정을 중요시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며, 반대로 그가 아닌 다른 후보를 상무위원에 올린다면 차기 지도부가 사회개혁에 무게를 둔 분위기일신을 꾀했다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올해 초부터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불어온 재스민혁명 바람과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대처는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외부세계의 민주주의 바람에 얼마나 민감해 하는지를 보여준다. 때문에 언론통제에 대한 필요성이 더욱 높아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류윈산은 이변이 없는 한 상무위원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다.
◆재스민 바람을 타고
중국은 경제적으로 미국과 함께 G2반열에 올라섰지만 언론의 자유는 더욱 통제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언론통제의 정점에는 역시 중앙선전부가, 그리고 류윈산 중앙선전부 부장이 자리잡고 있다.
국제기자연맹(IFJ)은 지난 1월 중국의 언론자유에 관한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와 지방의 언론 당국이 최소 88건에 대해 보도통제를 가한 것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중앙선전부는 사안별로 각 언론사에 보도지침을 내리고 있다. 이에 불구하고 88건의 보도통제가 있었다는 데 서방언론들은 놀라워했다. 게다가 이는 겉으로 드러난 수치일 뿐 빙산의 일각이라는 게 IFJ의 설명이다.
특히 지난해 말 중국의 반체제 인사 류샤오보(劉曉波)가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이후 중국의 언론통제는 심화되는 양상이다. IFJ는 “예를 들면 당 중앙선전부는 올해 1월 모든 언론 매체에 대해 춘제(春節)를 앞두고 농민공들이 귀향 차표를 구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에 대해 보도하지 말도록 지침을 내린 바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중국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 발행되는 남방주말(南方周末)의 진보성향 칼럼니스트 창핑(長平)기자가 지난 1월 해고되기도 했다.
류윈산은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한 사업소조회의에서 “한손으로 번영을 틀어쥐고 한손으로 관리를 틀어쥐어 인터넷과 핸드폰 미디어를 사회주의선진문화와 공공문화, 인민 정신문화생활의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해 인터넷통제 강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재스민바람을 타고 더욱 심화되고 있다. 특히 공산당 지도부로서는 더욱 효과적이며 세련된 언론통제책이 더욱 절실해 지고 있는 상황이다. 올해 초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불기 시작한 민주화 열기는 미미하나마 중국에도 상륙했다. 지난 2월에 산발적으로 재스민 시위가 벌어졌고, 공산당은 이를 차단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시위예상지역에 대규모의 공안이 배치됐으며 인터넷 검열은 유례없이 강화됐다.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차기 국가주석으로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 역시 사회통제 강화 방안으로 ‘대중공작’의 강화를 지시하고 나섰다. 지난해 2월 시진핑은 베이징 중앙당교에서 열린 성(省)과 중앙정부 간부 세미나 수료식에서 “사회관리에 대중공작을 결합시킴으로써 사회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고 사회안정을 지켜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시 부주석의 이 같은 발언은 세미나가 시작된 19일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사회관리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며 구체적으로 인터넷 관리 감독 강화를 주문한 데 이어 나온 발언으로 대중공작의 중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시 부주석의 이날 발언은 ‘재스민 시위’ 정보를 인터넷에서 철저히 차단하고 민주화 운동가들을 대거 체포하는 강압적 방식과 함께 민심이 동요하지 않도록 유화책을 병행해 선제적으로 사회관리를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당시 세미나에는 류윈산 선전부장도 참석했었다.
베이징의 한 정치학자는 “최근까지의 중국의 사회양상을 보면 류윈산 선전부장의 역량이 더욱 필요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년 당대회에서 류윈산은 어떤 식으로든 중용될 여지가 많아졌다”고 해석했다.
◆중화민족 개념전파의 첨병
류윈산은 ‘중화민족주의’ 이념의 전파와 선전작업에도 최일선에 위치해 있다. 중국은 사회주의 이념의 퇴색속에 소수민족 갈등 문제, 지역과 계층간 소득격차 등 사회적 분열요소가 확산되는 시점에 맞춰 새로운 통합개념으로 `중화 민족주의'를 제창하고 있다. 중화민족은 한족(漢族)뿐 아니라 55개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우리나라가 문제삼고 있는 동북공정 역시 중화민족주의라는 개념하에 펼쳐지고 있다.
지난 2006년 9월 류윈산이 서울을 방문했을 때 당시 김근태 전 의원, 강재섭 전 의원 등이 류윈산에게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양국간의 갈등을 물어본 것도 중앙선전부장이 이념공작의 최일선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동북공정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고 류윈산은 “동북공정을 연구하는 학자들 개인의 문제이지 중국 정부의 입장이 아니다”고 대답했다.
중화민족은 류윈산의 발언에서 자주 등장하는 단골메뉴다. 특히 소수민족 자치구에 방문할 때면 항상 중화민족을 이야기한다.
2009년 네이멍구를 방문한 류윈산은 “어렵게 이루어진 민족단결의 좋은 국면을 소중히 여겨 중화민족 테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는 각 민족 대중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충칭에서는 “당의 영광스런 혁명역사를 토대로 민족정신의 혈맥을 계승해 전국인민들의 단결분투의 공통의 사상적 토대를 굳건히 하자”고 발언했다. 지난해 열렸던 중국연극가협회에서는 “민족문화의 입장을 고수하며 예술의 창의성 북돋아 중국 연극예술산업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자”며 민족개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