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김지성 기자) “재주는 곰이 구르고, 돈은 사람이 챙기고…”. 한국 전자업체가 잘 나갈 때에도 종종 인용됐던 속담이다.
김지성 차장/산업부 |
한국 전자산업에서 부품은 언제나 아킬레스건이었다. 대일 무역적자 현상을 설명하는 단골 메뉴에도 한국 전자산업의 일본제 부품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지적이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 들어 한국의 부품산업이 예년과는 판이하게 달라지고 있다.
상반기 부품소재 산업이 사상최대 수출 실적을 기록하면서 눈에 띄었다. 한국 부품소재산업은 상반기에 수출규모 1095억달러, 무역수지 흑자도 372억달러로 반기기준 모두 사상 최대치였다. 전체 대한민국 산업흑자 190억달러의 2배를 기록했다.
고무적인 것은 아시아 신흥국에 대한 수출이 호조를 이루면서 모든 부품소재 업종에서 두 자릿수 이상 의 높은 증가세를 보인 점이다.
특히 중국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 확대 정책에 힘입어 IT기기와 자동차 관련 부품 수출이 증가하며 대중 무역수지는 전년 같은 기간보다 1.7배 이상 증가했다.
물론 이 같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속빈강정’론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역시 대 일본적자가 문제였다. 대일 무역수지는 열연강판, LCD 유리 원판 등 수입의존도가 높은 제품의 수입이 증가하면서 120억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또 부품속의 핵심 부품은 여전히 일본에 의지하고 있는 구조적 한계까지 지적되면서 최근의 부품산업 호황에 대한 평가가 절하됐다.
감덕식 LG경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한국 부품산업이) 외형적 성과가 좋은 게 있지만, 왜 잘 나가는 것이냐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성과가 있었지만 핵심적인 기술력은 한계가 있는 것이다. 실례로 미래 사업에 대한 부품이나 소재는 일본이 여전히 뛰어나다. 전기자동차의 인버터라든가 배터리 안에도 보면 전극이나 분리막과 같은 핵심 소재를 국산화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올해 한국 부품산업의 호조는 업체들의 몸집을 부풀리는 기회가 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 우리 기업들이 잘하는 양산능력이 극대화된 결과여서 의미가 있다.
TV와 같이 현재 세계 최고인 한국 전자산업의 대표제품은 부품의 전방산업이다. 올해 부품산업의 호조는 전방산업에서 일본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쇠락한데다, 한국 부품 기업들의 커스터마이징 능력이 결합한 덕분이다.
한국 부품기업들이 한국 전자기업(대개는 같은 계열사인)들의 요구에 맞춰 시기적절하게 대응했기에 호황의 열차를 탈 수 있었다.
물론 부품기업의 가장 중요한 것은 품질이라는 점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부품기업들이 호황을 기반으로 매출규모를 키워 글로벌 상위 기업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있지만, 몇 십 년 동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일본 부품 기업들과 질적인 경쟁에서도 우위에 서기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한국 부품기업들이 올해 몸집을 키운 후 일본 부품 전문기업들의 인수·합병을 시도하는 것을 고려할 때가 됐다.
이미 LG이노텍의 경우 지난달 일본 요코하마에 부품소재 연구소를 설립해 안테나를 세웠다.
올해 한국 부품 기업들의 매출 호조가 반가운 이유도 이를 위한 기반 마련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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