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래 신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차범근, 허정무 전 대표 감독들과 1970~80년대를 풍미한 조 감독은 현역 시절 '컴퓨터 링커'로 불릴 만큼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미드필더였다.
정확한 패스와 영리한 경기 운영 능력은 물론 타고난 승부욕까지 더해 불과 21세 때인 1977년 싱가포르와 친선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가졌다.
171㎝의 크지 않은 키지만 시험을 쳐서 명문 진주고에 들어갔을 만큼 명석한 두뇌 플레이가 일품이었다.
1978년과 1986년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따내는 데 힘을 보탰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A매치 성적은 94경기에서 15골이다.
1987년 선수 생활을 접은 조 감독은 1988년 친정팀 대우에서 코치를 맡으며,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1992년 감독으로 승격됐으나, 1994년 성적 부진을 이유로 그만뒀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에는 대표 팀 코치를 역임하기도 했다.
지도자로서 성공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린 편이었다. 1996년 수원 삼성의 코치를 맡았으나 1년 만에 다시 물러났다. 이후 브라질 유학을 거쳐 1999년에 FC서울의 전신 안양 LG 지휘봉을 잡았다.
이때부터 조 감독은 지도자로서의 능력을 발휘하며 2000년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영표(알 힐랄)·이청용(볼턴)·김동진(울산)을 비롯해 정조국·고요한·고명진 등 현재 서울의 주축 멤버들을 키워냈다.
중학교에 다니던 이청용을 스카우트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골 넣는 수비수'로 주가를 높인 이정수(가시마)가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포지션을 옮긴 것 등이 모두 조 감독의 작품이다.
2004년 서울 감독에서 물러난 조 감독은 이번엔 유럽에서 견문을 넓히다 2008년 경남의 사령탑에 올랐고 이때부터 또 어린 선수들을 키워내는 수완을 발휘한다.
2006년 창단한 '젊은 팀'을 맡아 2008년 FA컵 준우승을 일궈냈고 올해 K리그에서도 선두 제주 유나이티드에 승점 1점 뒤진 4위에 오르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시즌 후반기 김동찬·이용래 등 젊은 선수들을 앞세운 경남은 '조광래 유치원'이라는 애칭이 붙었고 올해도 이용기·윤빛가람 등을 조련하며 한때 1위에 오르기도 하는 등 탄탄한 전력을 구축했다.
경기 스타일을 보면 현역 시절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체격이나 체력을 앞세운 축구보다는 아기자기한 기술 축구를 선호한다.
21일 축구대표 새 사령탑으로 공식 선임된 조 감독이 세대교체가 필요한 축구대표팀에 어떤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지 축구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용환 기자 happyyh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