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 유수의 투자은행(IB)들이 몰락하고 대형 상업은행(CB)과 보험사들은 공적자금으로 연명하는 처지가 됐다. 그러나 국내 은행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고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
내실경영과 철저한 리스크 관리에 힘입은 바 크지만 그동안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방에 머물러 왔던 탓에 오히려 큰 피해를 보지 않고 이번 금융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는 지적은 아프다.
2010년 새해가 밝자마자 은행권은 지난해 악화된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해 다시금 공격경영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 때문에 금융위기 여파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은행간 출혈경쟁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고만고만한 규모의 은행들이 경쟁하는 국내 금융시장을 벗어나 새롭게 재편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는 경쟁력 있는 메가뱅크를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 메가뱅크 주역은 누구?
우리금융지주는 '빅뱅'으로 불리는 올해 은행권 인수합병(M&A) 대전의 태풍의 눈이다. 지난 2008년 메가뱅크 논의가 본격화할 때도 우리지주와 산업은행, 기업은행을 묶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현재는 KB 신한 하나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회사와의 대등 합병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파트너가 누가 되든 총자산 328조원의 우리지주를 인수할 경우 단번에 압도적인 리딩뱅크로 도약할 수 있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하나지주와의 합병 가능성을 가장 높게 보고 있다. 다른 계열사는 떼어 내고 우리은행만 인수할 것이라는 설, SK텔레콤 등 산업자본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전에 나설 것이라는 설 등 시나리오는 다양하다.
자산규모 국내 1위인 KB지주는 우리지주보다 외환은행 인수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매각을 공식화한 만큼 연내에는 매각 작업이 속도를 낼 것으로 전망된다.
리테일에 강점을 가진 KB금융과 기업금융 부문의 노하우를 보유한 외환은행이 결합할 경우 시너지가 극대화할 수 있다. KB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면 우리지주와 하나지주가 합쳐도 이를 견제할 수 있는 규모를 갖추게 된다.
외환은행 인수전의 또다른 변수는 산은금융지주다. 수신기반 확대를 위해 기존 시중은행을 인수할 필요가 있어서다. 민유성 산은지주 회장도 지속적으로 외환은행 인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부가 메가뱅크 육성에 애착을 갖고 있는 만큼 연내에는 은행간 짝짓기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다만 어떤 경우라도 국내 은행끼리 과당경쟁을 벌이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우물 안 개구리' 벗어나야
올해는 국내에서 G20 정상회의가 개최된다. 한국의 높아진 위상을 세계에 알리며 글로벌 경제 체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국내 대기업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지난해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수출액을 기록했다.
국격(國格)이 높아지고 경제력도 세계 10위권에 도달했지만 유독 금융 부문에서는 글로벌 플레이어가 나오지 않고 있다.
좁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치고 받으며 출혈경쟁을 일삼는 병폐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선진 금융기관과 겨룰 수 있는 메가뱅크를 키워야 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간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장기 전략을 세우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수익에 집중할 수 밖에 없다"며 "이 때문에 고비용 저효율의 폐단이 이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은행간 인수합병 과정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은 무리한 짝짓기로 인수자나 피인수자가 서로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막는 것이다.
자금 여력이 충분치 않거나 시너지 창출이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덩치를 불리기 위해 인수전에 뛰어드는 우(愚)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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