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애증이 섞인 묘한 감정이 흐른다. 미워할 수도, 그렇다고 마냥 예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흥하게 할 수도,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먹여 살릴 수도 있다.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다.
경제용어로 도넛형 경제, 피자형 경제라는 말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형용한 말들이다.
도넛형 경제의 대표적인 예는 미국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몇 손가락에 꼽히는 거대 기업이 상당수 있다. 그러나 이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는 측정하기 어려울 만큼의 자본과 기술격차가 존재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불연속을 빗대어 도넛형 경제라고 일컫는다.
피자형 경제의 대표적인 예는 일본이다. 일본은 중소기업의 탄탄한 기술력과 자본에 힘입어 대기업들이 빛을 발하고 있다. 그래서 높은 신용과 기술력을 앞세워 세계무대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것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이처럼 복잡다단한 관계설정 속에서 연결되어 있다. 도넛이거나 피자이거나 모두 다 일장일단이 있지만 말이다. 대만의 경우 20년 전만 해도 우리보다 상당한 기술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선진국 문턱까지 올라섰던 나라다. 하지만 대만은 20년이 지난 지금 GDP나 1인당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있지 않다. 이견이 있지만 그 원인이 내로라할 만한 대기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으로 이야기 하곤 한다.
대기업 제품 속에는 100% 자체기술로 생산하는 것은 거의 없다.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핵심적인 기술을 뺀 나머지는 하청업체에서 들여와서 조립하는 과정만 대기업이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도넛형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 몇몇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움직이는 구조다. 대만은 우리와 달리 중소기업이 주축이다.
대기업이 살아야 중소기업이 산다. 반대로 중소업체의 기술력이 높아져야 대기업에서 생산하는 제품의 품질이 좋아진다. 가끔 적대적이기도 하지만, 상생의 관계 속에 놓여 있다. 이상적인 것은 대기업 주도의 관계가 아니라 중소기업이 대기업을 밀고 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얼마 전 모 국내 경영연구원 주도로 대기업 CEO들이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리더십과 경영을 돕기 위한 멘토(조언자)로 나선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대기업 경영자들이 대거 조언자로 나선 것도 드문 일이라고 한다.
멘토로 나선 이들은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남용 LG전자 부회장, 박용만 두산회장,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 오명 건국대 총장,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다.
중소기업 경영자들에게는 살아있는 리더십 노하우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조금 불편한 사이일수 있음에도 기꺼이 나선 이들 8인의 현자(賢者)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아주경제=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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