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2월18일은 ‘경제 살리기’를 최대 과제로 내세우고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재정을 총괄할 책임자로 강만수 장관이 내정된 날이다.
당시 인수위를 출입하던 기자는 알고 지내던 재정부 한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강 장관에 대해 물어봤다. 그는 “옛날 차관으로 모셨고, 부처 내 요직을 두루 거쳐 경험이 없는 사람보다 편하게 느껴진다”며 “당선자의 경제공약에 밝은데다 재정부 실무에도 정통해 큰 우려가 없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경제 성적표와 평가는 모두 혹독하기만 하다. 올해 3%대 성장을 내세웠지만 저성장-고물가란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국제유가 급등,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세계경기 침체 등 외생적 요인 탓이 크긴 했다. 하지만 정책 실패가 상황을 악화시켰다고 보수 경제학자들 조차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하고 있다.
특히 ‘귀를 막은 채’ 수출 대기업에만 혜택이 돌아가는 고환율 정책 드라이브는 ‘타오르는 불’(물가)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강 장관은 취임 초부터 고환율 정책을 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틈만 나면 “환율을 시장에 온전히 맡기는 나라는 없다”며 “물가를 다소 희생해서라도 경상수지 적자폭을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23년 전 자신의 경험을 들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설파했지만 지난 2003년에도 경험했듯 무리한 시장 개입은 환투기만 초래할 뿐이다.
이 때문에 강 장관에 대해 “뭐든 하면 된다는 70년대식 스타일”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개발독재 시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정책 실패로 경제주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게 된 점도 큰 문제였다. 어려울수록 국민이 신뢰하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예측을 어렵게 했다는 것이다.
소통 문제도 불거졌다. 재정부 내부에서는 그동안 강 장관의 명석함을 평가하면서도 상당수 공무원은 그의 성장 집착과 고집으로 허심탄회하게 정책 논의가 이뤄지지 못하는 분위기를 아쉬워했다.
1.19 개각으로 물러나는 강 장관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며 스스로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를 보며 느낀 것은 역시 스스로 경험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상상력을 펼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새 경제팀 수장으로 내정된 윤증현 전 금융감독위원장 역시 ‘올드보이’에 관료출신이라는 점에서 강 장관과 공통점이 많다. 전임자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관료로서의 과거 경험에서 벗어나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일부터 해결해야 한다.
올해 경제 정책의 역점을 물가 및 민생 안정에 두기로 한 이상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다만 외환 보유고를 풀어 환율을 끌어내리는 정책은 최대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변동 환율제에서 정부 개입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외환시장 개입은 과도한 쏠림 현상을 제거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경상수지 적자와 단기 외채가 늘어나는 터여서 적절한 외환 보유고는 늘 유지돼야 할 것이다.
물가도 상승률을 무조건 낮추려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등 공급 쪽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다 막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와 감세 정책도 잠재 성장력 확충을 위해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