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국이 된 그 영광 뒤에 보이는 음영(陰影)

2024-10-14 00:00

김호운 한국문인협회 이사장
2024년, 한국 문학이 영광의 날개를 단 해다.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이 전해지던 날 우리나라 문인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나 환호성으로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온 나라가 들썩였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가 들썩였다. 소설가 한강 개인의 영광이자 대한민국의 영광이다. 필자도 기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그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탄생했고, 수상자인 한강 소설가는 아시아에서 여성 작가로서 최초 수상자가 됐다.

그뿐만 아니다. 이렇게 사전 분위기 없이 조용히 수상자가 결정된 적도 없었다. 그동안 이맘때쯤 되면 국내에서는 누구누구가 후보로 올라갔다며 언론이 들썩였고, 발표가 임박하면 후보로 거론되는 문인의 집 앞에는 언론사 기자들이 몰려가 장사진을 치기도 했다. 심지어 자신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다거나 유력한 후보라며 불티나게 사전 홍보하는 분도 여럿 보았다.

올해에도 그랬다. 그런데 수상자 발표가 있기까지 한강 소설가의 이름을 거론하는 뉴스는 거의 보지 못했다. 조용했다. 수상 당사자인 한강 소설가조차도 몰랐을 정도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뉴스가 보도되자 거짓말 아닌가 하고 의심하는 분도 보았다. 
 
조금 낯선 듯하지만, 이것이 문학의 힘이다. 올해 노벨문학상은 진정한 문학의 힘으로 수상하였기에 그동안 문학의 진수를 몰랐던 분들은 많이 놀랐을 것이다. 어떤 분은 수상 배경으로 우리나라의 국력을 들먹이기도 하나 올해 노벨문학상은 순수하게 한강이라는 소설가의 문학성 평가로 받은 것이다.

국력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이지만, 이것이 수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하는 건 수상 작가에 대한 결례다. 이는 노벨문학상 역사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며, 문학의 진정한 모습을 보는 듯하여 더욱 기쁜 마음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가 있자 여러 매체에서 필자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왔다. 즉답으로 “이는 작가 개인의 영광이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의 영광이기도 하다.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문학이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에는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한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에게 보내는 축하 메시지와 함께 우리나라가 문학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에 섰다는 영광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며, 그동안 문학 융성 정책에 대한 정부와 사회에 보내는 아쉬움의 한 단면도 들어 있다.

그동안 우리 국민이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수없이 보도되었다. 사실이 그렇다.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의 수가 줄어 간다며 뜻 있는 많은 분이 우려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한강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자 문학인은 물론 전 국민이 하나 같이 축하와 함께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수상 발표 이후 한나절 만에 한강 소설가의 작품이 13만부나 불티나게 팔렸고, 주문이 폭주하여 미처 공급하지 못할 정도라고 한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문학인의 한 사람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책을 좋아하고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왜 책을 잘 읽지 않았으며, 문학을 사랑하는 일에 소홀히 했을까.

그뿐만 아니다. 너도나도 올해 대한민국이 문학상을 받을 것을 예견했다는 분들도 여기저기에서 나타나고, 심지어는 한강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탈 줄 진작 알았다며 자신이 쓴 글을 공개하는 분들도 있다. 그동안 문학 작품을 읽지 않은 것은 “다른 문인들의 작품은 재미 없어서”라고 간단히 대답할 수도 있다.

물론 이를 나쁘게 보는 건 아니다. 다만, 왜 갑자기 문학으로 몰려들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궁색해지는 게 부끄러워서다.
 
우선 한국에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무엇이 달라질까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을 많이 받았다.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달라지며, 이를 문학 융성이라는 순기능으로 작용하자면 무슨 일부터 바꾸어야 할까.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함께 생각해 보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 언론에서 “출판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다. “그렇지 않다”고 즉답했다.

그 이유는 평소 우리가 책을 많이 읽고 문학을 사랑했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하지 않았지 않은가. 물론 한강 소설가의 작품은 그럴 것이다. 언론 보도에서도 나왔지만,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한나절 만에 한강 소설가의 작품이 13만부나 팔렸다.

책을 사려고 서점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의 사진을 보도하기도 했다. 외국 작가가 수상했을 때도 그러했는데, 하물며 우리나라 소설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이 정도 모습에 놀랄 일은 아니다. 지금까지는 번역을 통해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읽었는데, 올해는 ‘원서로 읽는다’며 우스갯말이 나올 정도로 국민의 축제다.

이런 쏠림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지만, 출판 시장 전반의 발전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 쏠림현상으로 그나마 잘 팔리던 책들도 당분간은 이 영광의 그늘에 가려 뒤로 밀려나기도 할 것이다. 따라서 많은 출판사가 당분간은 매출 증대를 기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된다.
 
10월 11일 오후 ‘제38회 책의 날’ 기념식장에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한강 노벨문학상은 국가의 영광이며, 올해 출판 예산 30억원 늘리겠다”고 말했다는 뉴스를 읽었다. 한국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에 대해 개인으로서도 국가적으로도 바랄 데 없는 영광이라고도 말했다. 
늦은 감은 있지만 참 고마운 말씀이다. 왜냐하면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도 예산안에서 한 해 60억원 규모로 운용해 온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 예산이 통째로 사라져서 문인들과 출판계에서는 ‘책 읽지 말라는 정부’라는 비판이 일기도 했기 때문이다. 국민이 책을 잘 읽지 않는 현상에다 정부조차 책 읽는 데 사용할 정책 예산을 없애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문화정책, 문학 융성에 대한 민얼굴이다. 국격을 높이는 일에 정부는 많은 예산을 들여 정책을 폈다. 뜬금없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소설가 한 사람이 이를 한꺼번에 해내 버렸다.

정부가 이번 일에 직접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은 것도 아니다(물론 그동안 번역 사업 활성을 위해 정부가 노력했다). 문학의 힘으로 스스로 해낸 일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국가로서 이후 일어날 현상을 어찌 살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부와 우리 사회, 우리 문인들 모두 이를 순기능으로 발전시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

문학이 우리나라 국격을 계속 넓혀 나갈 것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그동안 문학 융성 지원에 인색했던 마음들, 문학을 사랑하는 일에 소홀했던 마음들을 다잡아보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

책 읽는 국민이 많은 나라,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나라라는 영광도 함께 얻게 되기를 소망한다. 이는 개인이나 국가의 영광이기 전에 개개인의 삶을 웅숭깊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삶을 꾸려가는 것은 행복만을 추구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좀 더 향기롭고 아름다운 삶을 만들어가는 일에 마음을 보태기를 간절히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