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요동치는 미국 대선판 …우리의 대응은?

2024-07-29 06:00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미국 대선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 고령 문제 등으로 우려를 낳았던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직을 사퇴하고 부통령인 카멀라 해리스가 후보직을 승계하는 것으로 정리되고 있다. 해리스의 바통 터치 이후 지지율이 상승세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일시적인 선수 교체 효과일 수 있고 100일 정도 남은 현시점에서 미국 대선 결과를 점치기는 시기상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주류인 백인들의 지지층이 견고한 공화당 트럼프 후보의 당선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
 
트럼프 후보의 8년 전 대선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MAGA)'이 이번에도 그대로 쓰이듯이 트럼프 집권 2기의 국제통상정책의 기조는 미국 국익 중심의 보호무역 강화로 1기와 큰 변화가 없다. 트럼프는 한발 더 나아가 중국에 대한 60%의 고율 관세 부과라든지 모든 수입품에 대한 보편적 10% 관세 부과 등을 공약하고 있고 바이든 대통령이 추진한 반도체법(CHIPS Act), 인플레이션방지법(IRA) 등의 축소 내지 폐지까지도 말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취했던 동맹국들과의 연대 강화와 차별화하기 위해서 동맹국들에도 ‘받을 것은 받겠다’는 식의 무역흑자 축소와 방위비 분담 등을 요구할 것임을 시사하고 있고 러시아 등 비동맹국들에 대한 정책 변화도 암시하고 있다.
 
이러한 미국 정부의 변화 가능성에 부담이 가장 큰 나라는 바로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정부 당시 친중 기조를 바탕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추진하였다. 그와 달리 윤석열 정부는 미국 등과의 안보 동맹 강화를 토대로 중국과의 거리두기와 힘에 의한 대북 안보를 추구하고 있다. 트럼프 1기부터 바이든 행정부까지 이어진 중국 고립화와 미국 중심의 경제안보 요새 구축은 우리의 경제안보 전략의 큰 그림과 부합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안보도 미국, 경제도 미국이라는 안미경미(安美經美)라는 조어까지 생겨났다. 안보연대가 필요한 일본, 호주, 대만 등 동참이 거스르기 어려운 세계적 대세였다.
 
미국행 투자 등 대미 경제협력은 현실적인 측면에서 수긍이 가지만 정치가 경제를 리드한다는 점에서 적잖은 비용을 수반한다. 트럼프 후보의 보편적 10% 관세 부과는 GATT 이전 시대(Pre-GATT era)로의 복귀를 연상케 한다. 1947년 이후 8번의 라운드를 거치면서 국제무역의 장벽을 낮추었던 GATT-WTO 체제를 거스르는 발상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 관세 인상 등 무역장벽을 쌓는 한편 밑바닥 경쟁(race to the bottom)으로 OECD 등에서 터부시되던 투자보조금을 주면서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미국의 대응에 빌미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는 중국도 관세 인상, 희토류 무기화, 국내 투자 자금 지원 등 미국에 대한 맞불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에 동조하는 국가들과 중국을 지지하는 국가들이 연합국과 주축국처럼 편을 짜서 대치하고 있다. 세계 경제 번영의 토대가 되었던 자유무역과 글로벌 비교우위 원리 대신 공급망 분절과 비효율이 세계를 짓누르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된다는 자조적인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압박과 유인책에 대한 우리나라의 선택지는 별로 없었다.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반도체와 자동차, 배터리 등의 투자 패키지를 발표하였다. 미국과 경제협력이 진행되는 시기에 대중 경제협력은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코로나 이후 중국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자체 기술력은 향상되어 중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게 되었다. 2022년 우리나라 수출 대상국은 중국이 1위, 미국이 2위였지만 2023년에는 미국과 중국이 자리를 바꾸었다. 짧은 기간이기 때문에 정치가 경제에 영향을 준 부분보다는 품목별 수출과 우리 제품의 국제 경쟁력 변화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대미 수출 증가는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이 기여한 반면 대중 수출이 줄어든 것은 중국의 경기 하락과 더불어 우리의 전반적인 대중 경쟁력 하락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에서 트럼프 제2기가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미국에서도 관세 인상 압력을 받고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하락한 중국 시장에서도 외면당하는 샌드위치 같은 처지가 될 우려가 있다.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치외교적으로 미국과 중국 양쪽에 대해 견뎌 내면서 우리의 경쟁력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
 
첫째, 대미 관계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 및 흑자 증가는 미국의 요청에 따른 한국의 대미 투자 확대와 대중 수출의 전환 등의 결과임을 적극 주장함으로써 한국에 대한 10% 보편 관세 및 방위비 분담 요구 등에 대응하여야 한다. 중국에 대해서는 정치외교적인 측면은 물론 국민 정서적으로 리밸런싱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분위기가 어떤지 수집하고 국내에 적극 보도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이 중국을 잘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대중 정서가 리셋될 수 있도록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둘째, 우리 경제의 구조조정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우리한테 반도체, 자동차마저 없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 대대적인 구조조정 노력을 펴나가야 한다. 인구가 줄어가는 것은 이제 우리 경제의 제약 조건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제조업은 일손이 있어야 하는데 인구가 줄어들면 모든 제조업을 유지할 수 없다.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하이밸류로 가면 일손·일자리 미스매치가 해결될 수 있다. 인구 감소는 자연적인 현상이고 합리적인 사람들의 적응 방식의 결과이다. 외국인 인력을 들여와 모든 제조업을 유지하려고 하니 자꾸 꼬이게 된다. 어느 나라에서인가 아이를 낳지 않으면 세금을 매긴다고 하는데 아이를 낳으면 돈을 준다는 발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셋째, 7월 초 정부가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제시한 역동 경제 로드맵, 특히 생산성 높은 경제시스템 구축 및 생산요소 활용도 제고 정책은 방향은 좋다고 본다. 그러나 기업 성장 사다리 구축 등 대응 방안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경제단체들이 ESG만 하지 말고 대대적인 생산성 혁신 운동에 앞장서야 한다. 일터에서 쓸데없는 보고 등을 줄이고 필요한 일에 집중하도록 하여야 한다. 생산성이 오르면 휴식도 늘리면서 보수로 되돌려 줄 수 있다.

넷째, 일할 곳이 없는 젊은이들이 창업기업에서 새롭게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혁파하여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새로운 기업들이 나올 수 있도록 제로베이스로 창업을 막는 모든 분야의 장벽을 혁파하는 것을 검토하여야 한다. 창업이 자유로운 미국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차선책이다. 우리 실정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은 보완하면 된다.
 
미국 대선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는 문제는 우리가 몰랐던 것이 아니라 해묵은 과제이다. 장차 닥칠 대미, 대중 현안 이슈 해결은 정치외교적으로 풀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노력해야 할 해묵은 숙제(Homework)에 대한 답을 내고 실천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거대 담론을 되풀이하기보다 더 늦기 전에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행동할 때이다.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