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이의 사람들] 에릭 오 감독이 '애니메이션'을 작업하며 느낀 감정들의 소중함

2024-06-24 10:25

애니메이션은 꿈과 상상력의 결정체다.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을 통해 꿈을 꾸고 상상력을 키워나가기도 한다. 그 힘은 어른이 된 우리의 자양분이 되며 때로는 큰 힘을 주기도 한다.

에릭 오 감독은 디즈니·픽사에서 '인사이드 아웃' '도리를 찾아서' '몬스터 대학교' 등 애니메이터로 참여했고 퇴사 후에는 '오페라'라는 작품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단편 애니메이션상 후보까지 올랐다. 그해 오스카 시상식의 유일한 한국 제작 작품이자 단편 애니메이션 부문 유일한 아시아 작품이었다.

어린 시절의 꿈을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구현해나가며 다채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는 에릭 오 감독. 애니메이션 제작 뿐아니라 제주도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며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는 에릭 오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에릭 오 감독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

어떤 계기로 애니메이터를 하게 됐나
-어렸을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너무 좋아했다. 어릴 때 누구나 만화와 캐릭터를 좋아하지않나. 성장하면서 만화를 덜 보게 되고 관심 분야도 바뀌는데 저는 계속 꾸준히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직업이 됐다.

작업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나 울림을 준 작품이 있나
- 너무 많다. 픽사 라따뚜이에서는 "누구든 요리를 할 수 있다"는 멘트가 기억에 남는다.
 
어떤 영감이 작업으로 이어지나. 평소 경험이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도움이 되는지 궁금하다
-모든 게 영감의 원천이다. 작은 감정이나 친구와 부모님과의 관계, 유튜브 짤 등 쓸데없다고 생각되는 게 자극이 되는 것처럼 모든 것들에서 영감을 얻는다. 성찰하고 관찰하려는 자세가 습관이 됐다. 사소한 감정이라도 잊으려고 하지 않고 더 생각하려고 한다.
 
취향이 경쟁력이 되는 시대에 감독님의 취향이 반영된 작품이 있나
-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작품과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이라는 작품 등 다르게 보고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한다. 이런 취향들이 모든 작품활동에 반영된다.
 
평소에 좋아하는 감정이 뭔지 궁금하다. <인사이드 아웃> 작업을 하면서 더욱 소중히 여기게 된 감정이 있나
- 슬픔에 대한 감정을 인지하고 멀리하려고 하지 않는다. 우울한 감정이 들 때 잊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성찰하려고 하는 편이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깊이있게 파악할 때 내안의 진리를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작업 중에 느끼는 감정들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주나
- 거의 100% 영향을 준다. <인사이드 아웃>을 작업할 때는 창작자들의 놀이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희노애락을 담아내는 영화였기 때문에 작업을 하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담아내기 좋았다. 라일리라는 여주인공을 깨우는 장면에서는 평상시에 느꼈던 미친 생각들을 토해내듯 반영을 했다.
인사이드 아웃2 [사진=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어떤 어린시절을 보냈나. 아버지가 ‘휴보’를 만든 오준호 박사인데 어떤 교육 환경에서 자라왔는지 궁금하다
-아버지는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아버지만큼 제게 많은 영감과 영향을 준 분도 없다. 에너지도 넘치고 칼 같은 분이라서 존경과 경외가 있는 존재다. 자기가 좋아하고 열정 있는 것이라면 고민하지 않고 들이대는 추진력,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치게 몰입해있는 모습을 닮은 것 같다.
 
명문대로 알려진 카이스트 교수로서 교육력도 강했을 것 같다
- 저희 아버지는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셨고 교육도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아버지 본인이 너무 좋아서 미쳐서 했던 경험을 해봤기 때문에
좋아하는 걸 안다는 것에 대한 가치를 아시는 분이라서 어릴 때부터 애니메이션과 만화, 그림과 예술을 좋아하는 걸 아셨고 애니메이션을 접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해외 출장 다녀오실 때마다 비디오테이프들을 사오셔서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을 접할 수 있었다.
 
애니메이션과 로봇 모두 누군가의 상상에서 시작되는데 서로의 직업에 있어서 영향을 받을 때가 있나
-영향을 받으면서도 물들지는 않는다. 아버지와 같은 길을 걸었다면 많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아버지의 그림자에 가려서 성장하기 힘들고 갈등도 있었을 수도 있는데 저만의 길을 가고 있다보니까 어느 순간 인정을 해주셨고 그때부터 더욱 깊은 대화를 할 수 있게됐다.
 
이번 <인사이드 아웃2>가 라일리의 사춘기를 다루고 있는데 감독님의 사춘기는 어땠나
- 미국과 한국을 왔다갔다 했는데 유년시절에는 자유분방한 미국에서 보내다가 사춘기 때 한국에 오니까 너무 힘들었다. 그러다가 적응하면서 이겨냈다.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사람들이 에릭 오 감독을 선택하는 이유를 뭐라고 생각히나
-선택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도권을 자기가 쥐고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자기 색을 만들어놓는게 중요하다.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


회사를 다니면서 어떻게 나만의 것을 만들어나갔나
- 너무 당연했다. 회사가 내 인생을 가두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조직이든 들어가면 나라는 자아를 잃어버리기 쉬운데 저는 그걸 놓지 않았다. 학생 때부터 스스로 스토리텔러라고 소개를 했다. 사회가 정한 프레임에 가두지 않는게 중요하다.
 
미국 교육을 받다가 한국의 공교육 시스템을 경험한 후 어떤 변화가 있었나
- 자유와 경험한 소중함을 놓지 않으려고 했다. 입시미술을 했는데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 작가님의 화방에서 그림을 배우면서 입시미술에 물들지 않으려고 했다.
 
어떻게 하면 나만의 아이덴티티를 지켜나갈 수 있을까
-생각을 많이 해야된다.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휩쓸리지 않고 자신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해야된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품을 보는 것도 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꾸준히 해야된다.
 
특별함을 이상하다 라고 생각하는 한국 사회에서 나만의 정체성과 상상력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감독님꼐서는 어떻게 그 과정을 지나왔나
-특별하고 이상하고 또라이적인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야된다. 규격화된 것에 나를 구겨 넣지 말고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멘탈도 필요하다.
 
흥행을 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대부분 귀엽더라. 언제 귀여움의 힘을 느끼나
- 이 세상에 많은 무기들이 있지만 끝판왕이 귀여움이다. 귀여우면 무장해제가 되고 그 존재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준비가 된다.
세상이 불편해하는 주제라도 귀여우면 이해해줄 마음의 준비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귀여워지면 갈등이 완화될 거라고 생각한다.
오스카 시상식에 참석한 에릭 오 감독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


직업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몇점이고 에릭 오 감독이 경험한 애니메이터 혹은 애니메이션 감독이라는 직업은 어떤 직업인 것 같나
- 직업 만족도는 100% 만족하는 마음과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있다. 만족하는 건 스스로 애니메이션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생각한다. 관찰과 성찰을 자주하고 귀여운 거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한다. 아쉽다고 느껴지는 건 요즘 모든 게 빨리빨리 소비되는데 애니메이션은 느림의 미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가치가 퇴색되는 게 아쉽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매체로 이야기를 풀어내야되나 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애니메이터라는 직업은 우리의 삶을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해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작업한 캐릭터 중에서 스스로 닮았다고 생각이 드는 캐릭터가 있나
- 모든 캐릭터들이 제 느낌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는데 그중에서 오페라 캐릭터가 가장 닮아있다는 생각이든다.
 
좋아하는 것을 오래하기 위한 에릭 오 감독만의 방법이 있나
- 잠깐 거리두고 휴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감사함과 소중함을 다시 깨달을 수 있는 것 같다. 그걸 잃어버렸을 때 스스로 나약해지는 것 같다.
 
직업병이 궁금하다. 직업병이 일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어떤 영향을 주나
-노는 것과 일하는 게 하나가 됐다. 이걸 일로 생각하는 사람이 보면 워커홀릭인 거고 어떤 사람이 봤을 때는 매일 노는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다. 배우고 연구하는 게 일체화된 사람이라서 주중 주말이 없다. 표현하고 성찰하고 영감을 받는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 어떤 순간에서도 소모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취약한 사람이다. 놀 때도 어떤 걸 느끼고 배우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다. 완전히 놀아본다는 걸 잘 못하는 것 같다.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불규칙하지만 영화 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본래 함께 모여 하는 예술 장르인데 에릭 오 감독에게 동료의 의미, 출퇴근의 의미가 궁금하다
-모든게 진심인 편이다. 그래서 많이 힘들어하기도 한다. 그래서 동료들도 제가 생각하는 비전에 최선을 다해준다. 소중한 동료 이상의 가치로 생각한다.
 

제주도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어떤 전시인가
-커리어를 봤을 때 단순히 영화에서 본 애니메이션만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제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은 움직이는 그림이고 이를 다채롭게 보여주는 전시를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제주도에서 진행하게 된 거다.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제주도에서 전시를 열게된 계기는 뭔가
- 제주 애월에 하우스오브레퓨즈라는 새로운 복합문화 공간이 오픈을 하며 그곳에서 높은 자유도와 주체적인 의사가 반영돼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표현했다. 제주도 전시는 그동안의 커리어에 있어서 가장 진심이 담겨있다. 이걸 만들어내기 위해 동료들의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요즘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건 뭔가
-인류의 미래다. 앞으로의 작품은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것 같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것, 환경적인 부분과 미래지향적인 부분에 대한 고민을 안할 수 없는 시대다.

커리어에 있어서 중요했을 때는 언제였나
-지금이다. 많은 게 변화하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틀이 변화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내 이야기를 해나갈 것인가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에릭 오 감독의 꿈은 뭔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서 꿈이 주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 계속 이 일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이 이야기를 해왔구나 라는 인정을 받을만한 포지션까지 꾸준히 활동하는 게 꿈이다. 그리고 장편 애니메이션을 계속 준비하고 있다.
[사진=비스츠앤네이티브스]


스스로의 직업을 정의하면 뭐라고 불리고 싶나
-스토리텔러로 불리고 싶다. 제가 표현하는 모든 것이 서사인 것 같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갈건가
- 솔직하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하는 것도 드러내지만 거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되는가 라는 생각을 던져주는 걸 작품에서 하고 싶다.
 
스토리텔링 할 때 개인적인 경험을 보편적인 이야기로 만들어 가는 방법이 궁금하다
- 그게 제일 어렵다. 그래서 중심을 잡기 위해서 작품마다 실험을 한다.
 
캐릭터 하나를 만들 때 매력적으로 만드는 비결이 있나
- 캐릭터가 아니더라도 인물도 마찬가지로 어디서든 매력적인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아이러니한 딜레마가 강하게 느껴질 수록 관객들이 매력적으로 느끼는 것 같다.
 
애니메이터 혹은 애니메이션 감독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관찰과 성찰을 많이 하고 세상 돌아가는 것에 깨어있고 기술적인 것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한다. 기술을 위한 기술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문한적인 내실을 다지며 원천적인 방향을 공부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에 모든 빙봉들에게 한말씀 해달라
- 우리 모두의 내면에 있는 빙봉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인사이드 아웃1을 작업하면서 많이 울었다. 빙봉이 의미하는 건 동심과 순수한 마음이고 진짜 잊지 말아야하는 뭔가를 상징하는 게 빙봉이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서 여러가지 가치관 때문에 어린시절 소중했던 걸 잊곤하는데 그래서는 안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눈빛이 바뀌어있다. 분야를 막론하고 내면에 있는 빙봉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
에릭 오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 [사진= 김호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