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래의 中企] 중처법 유예 vs 시행…존폐 기로에 선 50인 미만 중소기업

2023-11-22 06:00

[사진=아주경제]

중소기업계가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적용 2개월여를 앞두고 들끓고 있다. 대기업도 법 시행 이후 1년 10개월이 된 현재까지 중처법 내용과 적용 범위 등을 제대로 알지 못해 대응이 부족한 상황에서, 소규모 사업장까지 중처법 적용은 무리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중처법은 사망 사고 등 중대재해가 발생 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는 법이다. 업종과 관계없이 상시 근로자 5인 이상인 모든 사업장에 적용된다. 2021년 1월 법 공포 후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됐으나 상시 근로자가 50명 미만인 사업장이나 공사금액 50억원 미만의 건설 공사에 대해선 2년을 더 유예, 내년 1월 27일부터 확대 적용될 예정이다.
 
중소기업계는 중처법을 최소한 2년 유예하자는 입장이다. 첫 손에 꼽히는 문제는 사업주 의무사항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현장에서는 컨설팅 업체, 정부, 공단 등에서 지적하는 내용도 달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도 오락가락하고 있다는 불만이 팽배하다.

 
의문부호 달린 중처법 명확성 원칙
[자료=연합뉴스]
 
실제로 중처법 제4조만 봐도 중소기업계 입장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 있다.
 
중처법 제4조 제3호는 ‘유해·위험 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루어지는지를 반기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필요한’ 조치를 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나 내용은 규정돼 있지 않다.
 
중처법 제4조 제4호 가목 역시 마찬가지다. ‘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안전·보건에 관한 인력, 시설 및 장비의 구비 등에 필요한 예산을 편성하고 그 편성된 용도에 맞게 집행하도록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역시 ‘필요한 인력 등’이나 ‘필요한 예산’ 범위를 판단할 기준이 구체적이지 않다.

△필요한 조치가 무엇인지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는 어떤 사례인지 △안전·보건 관계 법령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예견하기 어렵다면 과연 ‘명확성 원칙’이 지켜진 것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중기중앙회에 따르면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준비 미흡으로 나타났다. 지난 8월 중기중앙회 조사에 따르면 50인 미만 사업장의 80.0%가 ‘아직 준비 못했다’고 응답했으며, 85.9%는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장은 “2개월에 중처법이 소규모 사업장까지 법이 적용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심각한 경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어 “중소기업은 사업주가 영업, 생산, 경영 등 1인 다역을 수행하고 있어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아 부재시 폐업 가능성이 크고, 근로자도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노동계는 정부 중처법 2년 유예 기류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50미만 사업장이 중대재해 발생의 온상인 만큼 중처법 2년 유예는 노동자들의 죽음을 방치하겠다는 것과 같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실제로 지난해 산업재해 현황에 따르면 작년 산재 사고 사망자는 모두 874명으로, 이 가운데 81%인 707명(5∼49인 365명·5인 미만 342명)이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사망했다.
  
법제사법위원회는 22일 전체회의에서 해당 법안 소위 상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