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눈'부터 '영지'까지...국립극단, 서계동서 13년간 선보인 작품들

2023-08-05 07:00
2011년 '3월의 눈' 시작으로 13년간 공연 228편…관객 25만1333명
명동예술극장과 새롭게 임대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서 공연

2011년 무대에 오른 '3월의 눈' 공연 장면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예술감독 김광보)은 13년간의 서계동 열린문화공간 운영을 마무리하고 오는 7일 임시 터전인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로 이전한다.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은 연극계에 의미있는 발자취를 남겼다. 2010년 개관식 이후 2011년 첫 공연 ‘3월의 눈’(배삼식 작·손진책 연출)부터 2023년 마지막 공연인 청소년극 ‘영지’(허선혜 작·김미란 연출)와 ‘보존과학자’(윤미희 작·이인수 연출)가 폐막하기까지 약 13년간 국립극단은 이곳에서 228편의 공연을 2498회 올렸다. 그 기간 관객 25만1333명이 국립극단을 찾았다.
 
2011년 3월 백성희장민호극장 개관기념으로 올린 ‘3월의 눈’은 제목처럼 특별한 작품이다.
 
국립극단 원로 단원 백성희, 장민호가 자신들의 이름을 딴 극장에서 3월의 눈처럼 사라짐 속에 담긴 인생의 여운을 연기해 큰 갈채를 받았다. 9일간 2411명의 관객이 다녀갔고, 호응에 힘입어 이후 박근형, 손숙, 신구, 오현경, 정영숙 등 이제는 국민배우가 된 국립극단 단원 출신의 원로들과 함께 여러 차례 재공연했다.
 
특히 2013년에 재공연한 ‘3월의 눈’은 20회 전석매진을 기록하여 서계동 열린문화공간 역사상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국립극단은 어린이, 청소년과도 함께 호흡했다. 2011년 11월엔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의 첫 번째 청소년극 ‘소년이그랬다’(톰 라이코스·스테포 난쑤 작, 한현주 극본, 남인우 연출)가 백성희장민호극장 무대에 올랐다.
 
10일간 15회에 걸쳐 공연했고, 97.89%에 육박하는 높은 객석점유율을 기록했다. 청소년을 둘러싼 첨예한 사회 문제를 현실적이고도 날카로운 관점으로 풀어냈다는 호평을 받았다.
'영지' 공연사진 [사진=국립극단]
 
국립극단은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 2012년 10월 <차세대 연극인 스튜디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손님’(황석영 원작, 이해성 각색, 이병훈 연출)은 전쟁, 이념, 종교 등에 희생된 한민족의 모습을 사실주의 극으로 풀어내지 않고, 배우들의 몸과 물질을 무대 위에 형상화시키며 새로운 형태의 극을 선보였다.
 
미니멀한 무대에서 펼쳐지는 격동의 시대, 격정적 서사는 관객의 가슴에 깊은 울림을 남기며 ‘2012 한국연극 베스트7’에 선정되기도 했다.
 
2013년 9월 소극장 판에서 초연한 ‘알리바이 연대기’(김재엽 작·연출)는 그 해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과 대한민국 연극대상 연기상, 무대예술상, 그리고 ‘올해의 연극 베스트3’에 선정되어 화제가 됐다.
 
작과 연출을 맡은 김재엽의 개인사와 가족사에 근거한 작품으로, 1930년부터 2013년까지 두 세대에 걸친 이들 개인의 연대기는 대한민국 현대사와 맞물려 ‘정치적인 것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고 가장 사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묵직하게 전달했다.
 
2017년 6월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 ‘가지’(줄리아 조 작, 정승현 연출)는 이민 사회의 아픔과 고향의 음식에 대한 특별한 기억을 담은 희곡을 섬세한 연출과 탁월한 연기력으로 풀어내 관객과 평단 모두의 호응을 얻었다.
 
언어도, 음식도 너무 달라 평생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부자의 갈등과 화해를 통해 죽음, 더나아가 삶을 고찰한 수작으로 평가되며 동아연극상 작품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11월 소극장 판에서 선보인 ‘나는 살인자입니다’(호시 신이치 작, 전인철 연출)는 ‘목란언니’, ‘노란봉투’ 등으로 주목 받아온 연출가 전인철이 세계적인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 SF 소설의 대가 호시 신이치의 주요 단편들을 기발한 상상력과 훌륭한 연출로 표현하여 동아연극상 연출상, 무대예술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2022년 4월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선보인 ‘서울 도심의 개천에서도 작은발톱수달이 이따금 목격되곤 합니다’(배해률 작, 이래은 연출)는 과정 중심 작품 개발 사업 <창작공감: 작가>를 통해 만들어진 창작극으로 일상에서 겪는 크고 작은 역경을 선의와 연대로 헤쳐 나가는 꿋꿋한 사람들을 그렸다.
 
“사회에서 소외된 타자를 도심에 버려진 수달에 빗대어 이야기하는 방식이 굉장히 흥미롭고, 적대적이거나 이분법적 관계에 놓인 대상끼리의 소통과 연대를 말하며 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안했다”는 호평을 받으며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2019년 공연 된 ‘알리바이 연대기’ [사진=국립극단]
 
한편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은 실험적인 창작극의 산실로 많은 창작진과 배우들에게 사랑을 받아 온 곳이기도 하다.
 
국립극단은 ‘연극작품의 창작과 인재양성을 통하여 연극예술의 발전을 선도하고 민족문화 창달에 기여한다’는 설립 목적에 걸맞은 다양한 기획으로 한국 연극계의 지평을 넓혀 왔다. 블랙박스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과 소극장 판, 너른 마당과 두 개의 연습실은 이러한 기획들을 수행하기에 좋은 재료가 되었다.
 
우리나라 설화와 전설의 보고인 ‘삼국유사’ 속의 한국적 정서 가치를 기반으로 새로운 한국연극의 고전을 창조해내고자 기획한 <삼국유사 프로젝트>, 신인에서 중견으로 발전하고 있는 연출가들이 꾸미는 창작마당 <젊은 연출가 시리즈>, 어린이청소년극의 창작 지형을 확장하기 위한 사업인 <청소년극 창작벨트>, <한여름밤의 작은극장> 등을 진행했다.
 
김광보 국립극단 예술감독은 “국립극단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은 연극인들의 열정과 관객들의 희로애락이 재공연했다 차곡차곡 쌓인 상징적인 공간이다”라며 “떠나는 마음이 아쉽지만, 3년 후 새로운 터전으로 돌아오면 최신 시스템의 극장에서 연극을 제작하고 관객들에게도 보다 쾌적한 관람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또한 갖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문체부는 현재 국립극단 공연장(백성희장민호극장, 소극장 판) 및 연습 시설로 활용 중인 서계동 열린문화공간에 연극 중심의 복합문화시설을 건립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본계획에 의하면 연면적 4만1507㎡, 지하 4층~지상 15층 규모로, 2026년 12월에 완공된다. 국립극단은 완공 이후 용산구 서계동 부지의 새로운 건물로 돌아온다.
 
공사가 진행되는 3년간은 기존에 사용하던 명동예술극장과 새롭게 임대한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소극장의 2개 극장 체제로 운영한다.
 
서계동 열린문화공간 전경 [사진=국립극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