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막말과 사과, 그리고 보이콧

2022-10-27 00:10

지난 25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의원들이 윤석열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에 들어서자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존경하는 OOO 의원님.”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나 국정감사장에서 으레 국회의원들은 서로를 이렇게 호칭하고 말문을 연다. 국회의원은 자연인이 아닌 한 사람의 입법기관으로서 예의를 다해야 한다는 상호 존중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존경하는 OOO 의원님'보다는 상대를 향한 질타와 막말이 난무했다. 국감 첫날인 지난 4일 행정안전위원회 단상을 보자. 이 자리에서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윤석열 정부를 가리켜 '거짓말로 일관한다'는 등 비난을 퍼붓자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들은 서로 "버르장머리가 없다" "어디 감히"라며 설전을 벌였다.
 
국감 마지막 날인 지난 24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날 밤늦게까지 진행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종합 국감에서는 질의 방식을 놓고 여야 간 신경전이 고조됐다. 김남국 민주당 의원이 질의 시간이 끝났음에도 이노공 법무부 차관을 상대로 질문을 쏟아내자 김도읍 법사위원장은 “왜 답변을 못하게 합니까. 실컷 불러 놓고. 답변하면 고함지르고”라며 질의 방식을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최재해 감사원장을 상대로 한 질의에서도 또 한 번 김 의원에 대해 질의 방식을 문제 삼았다.
 
김 의원은 본인 의사진행 발언 요청마저 무시당하자 결국 폭발했다. 김 위원장이 “보좌진과 협의하라. (질의 방식과 관련해) 내 말이 틀리면 나중에 (시간을) 드리겠다”고 하자 김 의원은 “그걸 왜 보좌진하고 (협의)합니까. '이 사람아'”라고 고성을 질렀다. 김 위원장은 “말은 가려서 하라”며 얼굴을 붉혔다.
 
25일 윤석열 대통령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이 예정된 국회 본회의장. ‘이 ㅅㄲ 사과하라”는 피켓을 든 민주당 의원들이 본관 로텐더홀에 도열했다. 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들어선 본회의장에서 정의당 의원들도 같은 피켓을 자리 앞에 붙였다. 지난달 미국 순방길에서 불거진 '비속어 파문' 상대가 미국 의회가 아니라 한국 의회라는 대통령실 측 해명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시정연설 전 사전환담에서 윤 대통령에게 “비속어 발언을 사과하라”고 돌직구도 날렸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사과할 일이 없었다”며 (사과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취지로 답했다.
 
결국 윤 대통령에게 사과를 받지 못한 제1야당은 헌정 사상 첫 ‘대통령 시정연설 보이콧’을 감행했다. 집단 거부 운동을 뜻하는 '보이콧'은 1880년대 아일랜드의 악명 높기로 유명한 영지 관리인인 백작 찰스 보이콧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대기근으로 힘든 소작농을 쫓아내고 탄압·학대했다. 결국 소작농과 상인 등이 똘똘 뭉쳐 농장 일을 거부하거나 물건 판매를 거부하면서 보이콧에 맞섰다.
 
모든 보이콧이 항상 정당한 효과와 명분을 얻기는 힘들다. 헌법과 국회법에서 명기된 시정연설 청취를 하지 않은 민주당의 보이콧도 그러하다. 하지만 과거 찰스 보이콧이 소작농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사과 한마디만 했더라도 보이콧이란 말은 아예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헌정 사상 첫 '제1야당 불참' 시정연설을 한 기록을 남기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석유선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