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칼럼] 짙어지는 불황의 그림자... 총제적 비상대책 시급하다
2022-08-24 17:53
무역수지를 악화시킨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중간재 수입 비중이 높은 한국의 무역 특성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중간재 수입액 비중은 50.9%로 1차 산품(20.8%), 소비재(13.1%), 자본재(14.8%)를 크게 웃돈다. 특히 수입 중간재의 대중 의존도는 지난해 28.4%로 매우 높은 편이며 미·중 신냉전으로 인해 전망도 밝지 않다. 아울러 최근에는 대중 수출액보다 수입액이 더 크게 늘면서 한·중 수교 30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도 적자를 기록했다. 대중국 무역수지는 올 5월 이후 3개월 연속 적자를 나타내고 있다. 중국 경기 침체로 대중 수출이 부진한 가운데 수입은 중간재(올 1~6월, 22.7% 증가)를 중심으로 16.8% 늘었다. 한국 수출의 25%를 내보내고 있는 중국의 올해 성장률은 3%도 위태로울 전망이다. 중국 성장률이 1%포인트 하락하면 한국 성장률이 0.5%포인트 하락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어 걱정이다.
한국 수출에 장애가 되고 있는 또 다른 원인으로 엔화 초약세 지속이다. 미국 기준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상시 무제한 통화 스와프를 체결하고 있어 외화 유출과 외환위기 우려가 없는 일본은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 결과 일본 엔화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약세가 가속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화는 엔화에 대해 강세를 보여 2020년 초만 해도 100엔당 1150원 하던 환율이 최근 950원까지 하락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 중인 한국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이 하락하고 있다는 의미다. 반도체 등에서는 한국 제품이 기술적으로 일본을 앞서고 있지만 아직도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과 경합하고 있는 많은 제품들의 수출이 감소하고 있다.
둘째, 소비가 둔화하고 있다. 수입물가지수가 큰 폭으로 오르면서 순상품교역조건지수가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한 단위 수출로 얼마나 많은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 악화는 실질소득 감소를 통해 소비와 투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급등을 지속해 가계의 소비여력이 감소해 가뜩이나 부진한 소비가 더욱 악화될 우려가 크다. 국민소득에서 민간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46%로 가장 크기 때문에 가계의 소비여력이 감소해 소비증가율이 낮아지면 성장률이 낮아진다.
셋째, 수출 소비 부진으로 투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새 정부 들어 법인세 인하, 반도체특별법, 규제 개혁 등 기업 투자 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역부족이다. 법인세 인하, 반도체특별법 등은 여소야대 국회를 통과해야 하고 규제 개혁도 하지 못하도록 적시하는 것 외에는 모두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파격적인 네거티브제도 도입 등 보다 혁신적인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민노총 화물연대 등 강성노조의 파업도 이어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경제에 불황의 그림자가 짙어지면서 재고가 급증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LG전자 등 국내 주요 전자·반도체 기업의 재고가 큰 폭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이들 기업의 공장 가동률도 급격하게 떨어지고 있다. 최근 공시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6월 말 기준 재고자산 총액은 52조원으로 작년 말 10조7000억원보다 26% 증가했다. 삼성전자 재고자산이 50조원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SK하이닉스도 6월 말 기준 재고자산 총액이 총 11조9000억원으로 작년 말보다 33% 증가했다.
재고가 쌓이자 그 여파로 생산설비 가동률도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TV 등 영상기기 생산라인 가동률을 1분기 84.3%에서 2분기 63.7%로, 휴대폰 생산라인 가동률은 81.0%에서 70.2%로 각각 낮췄다. 삼성전자의 영상기기 휴대폰 부문 가동률이 60~70%대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기업들은 재고 정상화를 위해 시설 투자를 조정하는 등 다각도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10대 그룹은 지난 5월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1000조원 넘는 중장기 투자계획을 발표했는데, 고금리·고환율 등 자금 조달 비용이 늘고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으로 인해 과도한 투자와 생산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잇달아 국내외 투자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분위기라는 보도다.
넷째, 설상가상 미·중 신냉전의 여파가 한국에 쓰나미로 몰려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서명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Inflation Reduction Act)’으로 인해 한국산 전기차는 미국 정부가 구매자에게 지급하는 보조금 대상에서 빠져 현대차 아이오닉5는 보조금 7500달러(약 980만원)를 받지 못하게 됐다. 하루아침에 그만큼 가격이 뛴 셈이다.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기간부터 핵심 공약으로 주창해 온 기후변화 대응, 건강보험 확충, 세제 개혁 등을 포함한 핵심 개혁 플랜, ‘Build Back Better’의 마지막 세 번째 입법화 성과물이다. 국민의힘은 정부에 한국 차도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미국 측과 협상에 착수하라고 촉구하고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인플레이션 감축법'이 한·미 자유무역협정과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며 미국 측에 자동차 업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해 최근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한국의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1.7%로 한 달 만에 0.4%포인트나 낮추었다. 지난달 말 발표된 미국의 2분기 성장률은 -0.9%로 2개 분기 연속 역성장을 기록해 기술적 경기 침체에 빠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고 중국의 2분기 성장률도 0.4%에 그치면서 한국 수출 비중이 대중(對中) 25.3%, 대미(對美) 14.9%로 두 나라를 합치면 40%를 상회하는 점을 반영해 내년 성장률을 크게 낮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을 합한 한국의 민생고통지수는 이미 위기 수준이다. 내년에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가운데 성장률마저 하락해 고용 상황이 악화되면 2024년 4월 총선을 앞둔 한국 정치경제사회가 요동을 칠 우려도 있다. 정부는 물가 안정으로 민생 안정을 도모하는 등 기본적인 거시정책을 보다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한편 수출 다변화, 공급망 확충, 원·엔 환율 하락 대응 경제통상외교 강화 등으로 수출을 진작하고 규제 혁파, 노동 개혁 등 투자 환경 개선 정책을 보다 강도 높게 추진하고 둔화되고 있는 민간소비 진작 대책도 강화하는 등 총체적 비상대책을 추진해야 할 때다.
오정근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