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철스님의 '가로세로'] 연천역에서 급수탑의 독백을 듣다

2022-07-05 14:55

[원철 스님]

벌써 이 자리를 지킨 세월이 100년입니다. 요즈음 하늘은 짙은 회색 구름이 낮게 드리웠고 가까이 보이는 한탄강 물빛도 덩달아 잿빛입니다. 장마철인지라 무시로 빗줄기가 쏟아집니다. 세찬 소나기를 시도 때도 없이 온몸으로 두들겨 맞고 나니 이런저런 생각이 일어납니다. 동시에 옛일을 되돌아보니 내(급수탑)가 연천역에 자리를 잡은 것도 순전히 물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급수탑과 증기기관차 모형]


일제강점기 서울 용산역에서 동해안 원산까지 철길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1912년 서울과 원산 중간 지점인 연천역이 생겼습니다. 증기기관차는 물로 움직입니다. 200㎞ 남짓한 경원선 전 구간을 주파하기에는 용산역의 1차 급수량으로는 물이 모자랐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중간 기착지인 연천역에 2차 급수를 위한 시설이 필요했습니다. 경원선 유일한 급수탑이라는 명예로운 칭호도 붙었습니다. 괜히 우쭐해졌습니다. 교통량의 예측대로 상자형 급수탑에서 제공하는 물 공급은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상자형 급수탑 시절은 잠깐이었습니다. 연천역에서 멀지 않은 철원역에서 금강산 가는 철도가 뚫리게 됩니다. 한반도 제일의 불교성지인 동시에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은 날로 늘었습니다. 게다가 원산에서 함흥·청진 방향으로 이어지는 철도까지 개통되면서 물동량과 이동객이 기하급수로 증가합니다. 기존의 급수탑으로는 물이 부족했습니다. 급기야 3배 용량인 23m 높이의 원통형 급수탑을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드디어 나(급수탑)의 전성시대가 온 것입니다.
 
급수탑은 기능도 기능이지만 그 자체로 관광거리였습니다. 별다른 큰 건물이 없던 시절인지라 커다란 굴뚝 혹은 등대 같은 급수탑 자체가 볼거리인 까닭입니다. 게다가 본래 기능인 수증기를 내뿜으며 탄수차(炭水車)에 물을 공급하는 그 과정도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연천역 정차시간은 꽤 길었습니다. 여행객과 지역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역 주변에 번개장터가 형성되었고 간식거리와 지역 특산물까지 상거래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남북 분단과 6·25전쟁은 평화롭던 주변의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역사(驛舍)는 전쟁 와중에 불타 없어졌습니다. 역 건물은 없어도 철로만 무사하면 군사용 열차가 다닐 수 있습니다. 그래도 급수탑은 시멘트로 만든 튼튼한 구조물인 까닭에 곳곳에 총탄 자국을 남기면서도 살아남았습니다. 물론 급수탑이 없어지면 기차가 움직일 수 없다는 쓸모가 한몫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자 역 건물은 얼기설기 다시 지으면서 본래 기능을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전혀 본 적이 없는 신형 디젤기관차가 등장한 것입니다. 한동안 증기차와 디젤차가 교대로 달리는가 했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증기차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디젤차 숫자는 차츰차츰 늘었습니다. 중간 휴식이 생겨서 좋긴 했습니다만 휴식 횟수가 잦아지면서 한편으로 불안한 마음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불길한 예감은 그대로 적중합니다. 증기차가 사라지면서 완전한 디젤기관차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급수탑도 할 일이 없어졌습니다. 우두커니 서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디젤기관차가 오가는 것을 바라봐야만 했습니다. 혹여 디젤차에 기술적으로 큰 문제가 생기면서 다시 증기차 시대가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아닌 기대감도 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나(급수탑)의 희망사항일 뿐입니다. 능률과 효율 그리고 속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던 경제개발 시대에 무용지물이라면서 뜯겨나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었습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급수탑 기능을 정지시킨 디젤기관차 시대도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전동차 시대가 온 것입니다. 옛 역사(驛舍)는 이미 폐쇄되어 역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담장 안쪽으로는 전철 복선 공사를 위한 바닥 기초를 닦았고 하늘에는 급수탑보다도 더 높게 전동차에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시설들을 세웁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줄을 지어 즐비하게 만들고 있었습니다. 옛 역 건물을 비켜선 자리에 우람한 새 건물과 함께 왕복 노선의 양쪽 플랫폼을 지붕 덮은 기다란 구름다리가 이어줍니다. 내년(2023년)에 개통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기의 급수탑은 야외전시 미술작품인 양 사이좋게 서 있습니다. 지금 나를 찾는 사람들은 형님인 상자형 작은 급수탑을 동생인 줄 압니다. 크고 우람한 원통형 급수탑이 당연히 형님일 거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 오해를 풀어주려고 우리 둘 앞에 설치된 몇 개의 세련된 안내판에는 화려했던 지난 시절의 이력은 물론 형과 아우의 서열을 족보처럼 남겨 두었습니다. 또 곁에는 미니어처 같은 움직이지 않는 증기기관차를 축소형으로 만들어 우리 형제를 달래려고 장난감처럼 갖다 놓았습니다.
 

[경원선 전철 기반 공사장]


주변에는 정원을 만들고 통로에는 장식용 레일을 깔았습니다. 철도공원 겸 야외 박물관이 된 것입니다. 다소 초라하긴 해도 남아 있는 옛 역사는 60여 년이 되었습니다. 특히 2기의 급수탑은 100년 역사가 켜켜이 쌓여 있고 그 존재 의미를 인정받은 덕분에 2003년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근대사를 이 공간에서 지켜 온 공로 덕분에 우리 급수탑 형제는 다시 이 자리의 주인공이 된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해가게 마련입니다. 태어날 무렵 주인은 일본이었고 광복 후 한동안 북측에서 관리하더니 전쟁 후에는 대한민국으로 담당자가 바뀌었습니다. 또 100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갖가지 사연을 안고서 우리 앞을 지나갔습니다. 이제 인근 동네의 청춘 남녀가 찾아와서 공원 벤치에 앉아 밀어를 속삭이는 공간으로도 활용됩니다. 또 휴일이면 급수탑 앞에서 관광객이 인증샷 찍는 소리도 심심찮게 들립니다. 여전히 역할이 있고 또 그동안의 노고와 가치를 알아주고 또 찾아주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원철 필자 주요 이력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조계종 포교연구실 실장 ▷해인사 승가대학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