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의 과학의 시선} '아인슈타인이 누군지 아시오?" 100년 전 그의 누이가 던진 질문
2022-02-28 06:00
쏟아지는 교양수학책, 수학이 필요한 순간...
[최준석, 과학의 시선] 동아일보 1922년 11월 18일자 1면에 ‘아인슈타인은 누구인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황진남(1897~1970)이 썼다. 황진남은 당시 20대 중반이니 베를린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는 5년 전 스위스 취리히에서 겪은 얘기를 전한다.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사촌 누이(從妹)를 만났다고 한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소개합니다. 물리학과에서 연구하는 아인슈타인 양입니다.
우리 시대 위인인 아인슈타인씨의 사촌누이라는 여학생이 내게 말한 건, 5년 전 스위스 취리히대학에서 (내가) 공부할 때다. 당신은 물론 아인슈타인이 누구인지 아시오라고 그는 물어왔다. 아무 형편도 모르는 나는 부정사로 답하였다. (아인슈타인 양은) 기가 막히다는 듯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불쌍한 양반아! (나의 말을) 용서하시오. 자기 시대를 이해 못하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이 없다 합디다. 아인슈타인이라는 이름은 우리 시대의 특색입니다.
더구나 당신은 주야로 우주의 원성(原性)이니 인생의 원유(原由)이니 합니다. 그런데 상대론 없이 당신의 문제를 어찌 해결하시려 하오. 철학은 항상 몽매건곤(夢裡乾坤)에 있다가 자연과학이 한번 흔들어 깨워 주면 (깨어났다가) 며칠 못되어 다시 잠들고 맙니다. 당신은 꿈 그만 꾸시고 우리 시대의 진상계(眞相界)에 들어가 새로운 파도에 헤엄치고 놀아보시오!’”
물리학자 김재영 박사(KAIST 한국과학영재학교)에 따르면, 황진남은 동아일보에 1922년 11월 4회에 걸쳐 ‘상대론의 물리학적 원리’ 해설기사를 연재했다. 황진남은 아인슈타인을 직접 만난 첫 한국인이라고 한다.
동아일보에 아인슈타인 연재가 나온 지 100년이 지났다. 동아일보 기사가 나온 게 1922년이고, 올해가 2022년이다. 아인슈타인 노벨물리학상 수상도 100년이 되었다. 100년이 되었지만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 모른다. 아인슈타인 사촌누이 말마따나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자기시대를 이해 못하는 사람’에 머물고 있다. 개인적으로 다행스러운 건 몇 년 전부터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교양과학서를 통해 상대성이론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수학책을 읽으면서 같이 공부할 사람도 필요했고, 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소셜미디어에 수학책을 읽는다는 내용의 글을 여러 번 올렸다. 그랬더니 오래 전 고등학교 문과를 같이 다닌 한 동창이 댓글을 달고 물어왔다. “미적분을 왜 공부하나? 그 이유를 얘기해보게. 그 이유가 수긍되면 나도 수학 공부를 하겠네”. 나는 “신이 수학자라는 소문이 있네. 자연을 만들 때 수학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는 것이지. 신의 뜻을 알기 위해서도 신의 언어라는 수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네”라고 썼다.
신이 만든 자연의 법칙을 알아내고자 한 게 서양과학의 출발이다. 영국 수학자 아이작 뉴턴과 독일 수학자 라이프니츠가 발견한 수학 도구가 미적분이다. 뉴턴은 달이 지구 주변을 따라 공전운동을 하는데, 회전할 때 순간속도를 알아내기 위해 미분을 개발했다. 뉴턴과 라이프니츠 이후에도 수학자는 신이 자연을 만들 때 사용할 수 있는 원재료들이 무엇인지를 죽 찾아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은 헤르만 민코프스키라는 수학자가 찾은 민코프스키 공간이라는 기하학적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했고,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베른하르트 리만이라는 수학자가 찾은 리만 기하학이 있었기에 빛을 볼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주를 이루는 기본 입자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궁극의 이론 후보 중 하나로 끈이론이 있다. 끈이론 물리학자는 자연을 ‘끈’의 진동이라고 생각하는데, 끈이론으로 자연을 설명하기 위해 충분한 수학을 자신들은 갖고 있지 않다고 본다. 그래서 에드워드 위튼(프린스턴 고등과학원), 이기명(한국고등과학원), 김석(서울대 물리학과)과 같은 끈이론가는 수학적인 도구를 찾아가면서 끈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수학자나 물리학자를 외계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수포자(수학 포기한 자), 물포자(물리 포기한 자)가 많은 한국이다 보니, 수학과 물리학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낯설게 본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고, 일본이나 다른 나라의 형편도 비슷하다.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입자 물리학자 오구리 히로시(大栗博司) 교수의 책 <중력>에 그런 내용이 나온다. 오구리 교수의 경험담이다.
“학부모 모임에서 처음 만난 사람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무슨 일을 하십니까?’
‘중력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답하면 더 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예전부터 중력을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반응만 보여도 하고 싶은 말이 얼마든지 있지만, 대부분은 멍청하게 앉아있다 끝나 버린다.
‘그렇습니까? 저는 고등학교 때 물리가 가장 어려웠어요.’
어쩌다 대답을 하더라도 이런 반응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랬다. 가고 싶은 대학을, 수학 과목 시험을 망쳐 가지 못했던 쓰라린 기억을 갖고 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해 보니, 공부가 흥미롭다. 시험을 치는 부담이 없는 공부여서 그런지, 아니면 학창 시절과는 다른 접근법을 사용해서 그런지, 수학이라는 언어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는 게 즐겁다. 우연히 시작한 수학 공부이지만 이런 걸 모르고 이번 생을 살았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녁이면 술잔을 기울이고, 주말이면 낚시하러 가는 삶보다는, 삶과 자연의 깊은 진리를 찾아 책에 집중하는 시간이 즐겁다.
다행스러운 건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를 가보면, 수학과 과학책이 끝없이 새로 나오고 있다. 새로운 수학, 과학책을 남 못지않게 접하고 있는 내가 그 출간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다. 수학만 해도 <미적분의 쓸모> <역사를 품은 수학, 수학을 품은 역사> <발칙한 수학책> 등이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 순위에 올라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한국사회 흐름을 읽었는지 드라마와 영화에서 수학을 소재로 한 작품이 나온다. ‘멜랑꼴리아’라는 드라마가 지난해 말에 나와서 수학마니아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고,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가 3월 9일 개봉된다고 한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탈북한 뒤 남한 사회에서 자립형사립고의 경비원으로 일하는 북한 출신 수학자가 나온다. 자립형사립고 학생이 수포자가 될 뻔하다가 경비원 수학자를 찾아가서 수학의 세계를 발견한다는 성장 스토리다.
한국 수학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수학자 박형주 박사에 따르면 내년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세계수학자대회에서 한국인이 필즈상 후보로 기대를 받고 있다. 박형주 박사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내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세계수학자대회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라고 우려하는 글을 페이스북에 썼다. 수학책을 읽는 한국인, 상상만 해도 즐겁다. 수학책을 집어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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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대통령
서울 광화문을 버스 타고 지나는데 대형 플래카드 하나가 저편에 보인다.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혼자 웃었다. 지금 대통령이 보면 불편하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통령이 책 읽는 대통령이면, 저런 플래카드는 붙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플래카드를 걸어놓은 곳은 경복궁을 광화문에서 바라보고 오른쪽 끝쯤에 있는 동십자각 인근이다. 대통령이 차를 타고 오가면서 플래카드를 볼 수도 있는 위치다.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라고 하는 건 대통령 보고 책을 읽으라,라는 주문이라기보다는 그런 본을 보여달라는 뜻이 담겨있다. 한국 사회가 갈수록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책을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보다 한 걸음 더 나간 얘기를 하고 싶다. ‘과학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혹은 ‘수학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이다.
“앎을 좇는 건 모든 무슬림의 의무다”라고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는 말한 바 있다. 나의 수학 멘토가 얼마 전에 구한 책을 열어보이며, 책에 그런 문구가 쓰여있다고 했다. 동아시아 선인인 주희도 비슷한 말을 남겼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 어렵다‘(少年易老 學難成) ’짧은 시간이라도 가벼이 하지 마라‘(一寸光陰 不可輕).
한 사회가 도약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사람들이 놀라운 ’집단 의식‘을 갖는 게 요구된다. 영국이 근대화에 성공할 때 그 사회 지식인이 과학과 수학에 보인 열정은 대단했다. 거의 모든 지식인이 새로운 앎을 찾아 매달렸다. 그런 집단 의식 속에서 ’과학자’(scientist)라는 말도 생겼고, 과학이 탄생했다. 힘 센 주변국가의 침략을 부르지 않기 위해서도 과학 탐구와 기술력의 확보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