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현주 "원작 있는 작품 꺼렸지만…'지옥' 달랐다"
2021-12-03 01:16
연상호 감독의 말처럼 배우 김현주는 대중에게 깊은 신뢰감을 주는 연기자다. 1997년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를 시작으로 '사랑해 사랑해'(1998) '마지막 전쟁'(1999) '햇빛속으로'(1999) '덕이'(2000) '상도'(2002) '토지'(2004) '인순이는 예쁘다'(2007) '반짝반짝 빛나는'(2011) '가족끼리 왜 이래'(2014) '왓쳐'(2019) 등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꾸준하게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연기 활동 24년 동안 어떤 구설 없이 꾸준하게 '좋은 작품'에 출연해왔고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대중을 만족시켰다. 그의 필모그래피는 곧 대중의 신뢰감이기도 했다. '믿보김(믿고 보는 김현주)'이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지옥'은 김현주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준 작품이다. 원작을 가진 작품, 캐릭터를 꺼려왔던 그에게 용기를 주었고 장르적, 연기적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김현주의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역시나 '믿고 보는 김현주'였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지옥' 김현주의 화상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 제가 촌스러운 사람이라 '월드 랭킹 1위'라는 게 실감이 안 난다. 해외여행을 가서 사람들이 알아보거나 한다면 체감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그저 많은 분이 봐주셨다니 고마운 마음이 크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많은 분이 좋아하신다니 이제야 안심이다.
'지옥'이 왜 세계 시청자들에게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나?
- '지옥' 속에 종교, 신념 등 다양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인간의 삶과 죽음에 관한 보편적 이야기가 가장 마음을 끌었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관심 가질 수 있는 부분이지 않나.
- 원작이 있는 작품, 실존 인물을 연기하는데 부담이 크다. 과거 드라마 '토지'를 찍을 당시 정말 힘들었다. 워낙 명작인 데다가 여러 차례 드라마화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연기해야 하는지 어려움과 부담감이 컸다. 특히 '지옥'은 단단한 팬덤을 가진 작품이고 캐릭터 싱크로율에 관한 관심도 높았기 때문에 이를 깨지 말고 잘 연결해야 한다는 점이 숙제처럼 느껴졌었다.
그런데도 캐릭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웹툰이 줄거리, 캐릭터 등을 사실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물이 느끼는 순간순간의 감정, 충격들이 받아들여졌다. 또 '지옥'이라는 작품에 관한 호감도도 컸다. 예전에는 제가 연기해야 하는 캐릭터를 위주로 보았다면, '지옥'은 그 작품 안에 내가 속해지길 바랐다. 이미 주요 배역이 캐스팅된 상태였기 때문에 한 작품에 모여서 연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연상호 감독님의 응원도 큰 도움을 줬다. 나름대로 도전이기도 했는데, 제게 큰 용기를 주셨었다.
민혜진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 민혜진은 정의롭지만, 이상적인 캐릭터는 아니다. '지옥'은 극단적 상황, 극단적 공포 속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들은 곧 인간의 나약함에서 표현되는 거로 생각해서 민혜진도 보통의 나약한 인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도 민혜진은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1~3부에서는 너무 강인하게 그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4~6부의 변화가 강렬하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아서다.
민혜진은 '지옥' 전편에 출연하는 캐릭터다. 극을 끌고 나가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 제가 간과한 게 이 부분이었다. 1~6부까지 나온다고 해도 제가 극의 중심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1~3부는 유아인, 양익준이 주인공이고 4~6부는 박정민, 원진아가 주인공이라 생각했다. 두 이야기를 연결하는 브릿지 정도라고 생각한 거다. 전편에 출연한다는 부담보다는 이야기의 흐름이 달라지고, 주인공도 달라지니 민혜진이 이를 잘 이어줄 수 있을지에 관한 걱정이었다.
CG 촬영은 어땠나?
- 지옥 사자들은 실재하지 않으니까 어떻게 리액션해야 할지 고민이더라. 끊임없이 생각, 상상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부분에 우려가 있었지만, 막상 현장에 가보니 사자 역할을 안무가들이 담당하는데 그분들의 제스처에서 이미 위압감이 느껴지더라. 연기에도 큰 도움을 받았다. 감독님, 제작진들의 배려 덕인 것 같다.
'지옥'을 두고 여러 해석이 쏟아지고 있다. 김현주는 시청자들이 '지옥'으로 하여금 어떤 메시지를 찾길 바라나?
- '지옥'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화제가 되는 거 같다. 답 없는 질문을 던지면서 끊임없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매 순간 즐기면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우리 모두 죽음을 앞두고 있고 그 순간을 예측할 수 없으니까. 항상 죽음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적으로도 변화를 겪고, 도전하고 있는데
- 어느 순간 드라마를 찍은 뒤에는 '이 작품이 마지막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으로 뭐 하나 더 찍고 끝낼 수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품을 고르고 연기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가짐이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더 열심히 작품에 임했던지도 모르겠다. 그런 시간을 겪고 고민도 길어지면서 연기적 갈증을 느끼게 됐고 그간 해오지 않았던 '왓쳐'라는 장르 드라마를 찍고 자신감을 얻게 됐다. 그 작품으로 하여금, '지옥'까지 올 수 있었던 거 같다.
차기작도 연상호 감독과 함께한다
- SF 영화 '정이'다. 이번에도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작품이다. 열심히 촬영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이) 다른 분들이 생각하지 못하셨던 부분들을 제게서 발견하신 건지 그런 걸 만들어 주고 싶으셨던 건지는 잘 모르겠다. 감독님께서 새로운 시각으로 절 봐주셨다는 사실이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