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백의 新아방강역고-44] 무궁화 전성시대는 다름 아닌 일제강점기(1)
2021-08-21 08:00
무궁화 지역과 누에로 모독 참절당한 4천리 대한영토
4천리 대한영토 참절 오욕과 무궁화는 뗄 수 없는 관계
“일제 강점기 일제는 무궁화를 탄압했다”는 가짜뉴스
1920~1940년 조선 동아일보 무궁화 대서특필
4천리 대한영토 참절 오욕과 무궁화는 뗄 수 없는 관계
“일제 강점기 일제는 무궁화를 탄압했다”는 가짜뉴스
1920~1940년 조선 동아일보 무궁화 대서특필
무궁화 지역과 누에로 모독 참절당한 4천리 대한영토
1909년 9월 4일 일제는 청국에 간도협약(1)*으로 광활한 동서2천리, 남북4천리 만주땅을 중국에 넘겨 주었다. 일제는 한일병탄 경술국치 당일 1910년 8월 29일 조선총독부 관보 제1호로 한반도를 근역(무궁화 지역)으로 축소 조작 세뇌 작업을 개시했다.
1922년 1월 1일 동아일보사는 3천리로 축소된 조선지도 안에 모양을 채우라는 현상공모를 게재했다. 7000여명의 응모작 중 당선작은 대한영토를 무궁화와 누에지역으로 축소 모독한 그림이었다.
광활한 4천리 대한영토 백두산 호랑이가 무궁화와 누에로 모독 참절되었다. 알다시피 무궁화는 열대 또는 아열대 식물로 남중국 원산지 한반도에 야생 무궁화 한 그루없고 북한 지역에서는 재배도 어려운 식물이다.
4천리 대한영토 참절 오욕 분단과 무궁화는 뗄 수 없는 관계
필자는 '아주경제'에 2019년 '신경세유표12시리즈' 28회의 무궁화를 연재하고 2020년 6월 이를 묶어 김원웅 광복회장 감수, 강효백 저 '두얼굴의 무궁화'를 출판했다. 헌데 이 책은 올해 3월 생후 8개월도 못되어 요절했다.
모측에 의해 출간 직후부터 명예훼손, 모욕, 공갈, 협박, 업무방해 행각을 견디다 못해 2021년 3월 자의반 타의반 절판했다. 9월 말 이 책의 증보 혁신판 '꽃으로 위장한 전범기-무궁화'를 출판할 예정이다.
우선 '현대판 분서갱유'를 당한 것에 필자도 자기반성 중이다. 일제강점기의 무궁화에 대한 탐구는 소홀히 하고, 고조선과 구한말까지의 국내 무궁화 온·오프라인 텍스트 서술이 99% 이상 새빨간 거짓에만 집중했다. 대다수 원문에 없거나 오역, 위변조, 가필, 일본 문헌 표절과 검증없이 재표절 상호표절이 너무 심했던 것이다.
그리고 설마 1920~194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827회나 무궁화 근화 근역을 대서특필(대형화보 포함)해놓고도 일제강점기 일제가 무궁화를 극심히 탄압 모조리 뽑아버렸다는 거짓말을 했겠냐는 방심에 일제강점기 무궁화 진상 파악에 소홀히 했다. 그 대신 수천만건에 이르는 놀랍도록 유구하고 풍부한 일본 무궁화의 문건과 사진에 경악, 일본과 세계 각국 자료수집에만 몰두했던 후과다.
아방강역, 즉 대한영토 4천리 참절과 오욕 분단과 무궁화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이에 따라 필자는 일제강점기 일제와 종일매국노들이 무궁화로 대한영토 4천리를 왜 어떻게 얼마만큼 오욕, 참절, 세뇌했는가를 일제강점기 양대 한글신문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몇 회에 걸쳐 톺아보고자 한다.
“일제 강점기 일제는 무궁화를 탄압했다.” 알고보면 가짜뉴스
“일제 강점기 일제는 무궁화를 탄압했다"는 설은 알고보면 가짜뉴스로 판단된다.
∙“무궁화 묘목 나눠드려요” 이 행사는 일제강점기에 나라꽃이라는 이유로 탄압받았던 무궁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동아일보사가 시작한 사업으로 1985년부터 해마다 열리고 있다.
-동아일보2010.04.05.
∙일제강점기 때는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태워지거나 뽑히는 탄압을 겪어야만 했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무궁화는 서울 청와대 분수대 옆 무궁화동산에서 만나볼 수 있다.
- 국민일보 2021.07.20.
∙이 때문에 일본은 무궁화를 만지거나 쳐다만 봐도 병이 생긴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무궁화를 태우며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무궁화를 탄압했다.
-이데일리 2020.07.04.
-이데일리 2020.07.04.
∙<산림청장 기고> 국민과 함께하는 나라꽃 무궁화 무궁화는 일제 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져 말살 정책으로 인한 탄압을 받았다.
-헤럴드경제 2011.08.12.
-헤럴드경제 2011.08.12.
∙일제가 한국인의 얼과 정신을 있게한 무궁화를 도태시키는 것이 우리의 기개를 꺾는 것으로 알고 무궁화 말살 운동을 편 것이다.-매일신문 2008.7.19
<무궁화 수난의 시대적 배경> 인류의 역사에 민족의 이름으로 특정 식물이 가혹한 수난을 겪은 일은 우리 나라의 나라꽃인 무궁화가 유일한 것이다. 무궁화는 민족의 역사와 함께 겨레의 맥락 속에 숨쉬어 온 꽃이기에 일제 강점기 36년 동안에는 민족의 수난과 함께 피폐(據製)되고 빼앗겨 버리는 참혹한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만주, 상해, 미국, 구라파로 떠난 독립지사들이 광복 구국정신의 표상(表象)으로 무궁화를 내세우자 일본은 여기에 당황한 나머지 무궁화를 보는 대로 있는 대로 불태워 버리고 뽑아 없애 버렸다. 일제는 나라꽃 무궁화를 ‘눈에 피꽃’이라 하여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고 거짓 선전하였으며, '부스럼 꽃’이라 하여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고 하는 등 갖은 말로 우리 민족의 기개(氣觀)를 표현하는 무궁화 탄압에 극악(極惡)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나라꽃 무궁화에 관한 수난이 가중되면 될수록 우리 민족은 더욱 우리의 정신을 대변하는 무궁화를 사랑하고 숨겨가면서까지 지켜 왔다.
- 문화콘텐츠닷컴 , (문화원형백과 국가문화상징 무궁화),
1920~1940년 조선 동아, 무궁화 464회, 근화 157회, 근역 206회 대서특필
다음은 1920~1940년 20년간 동아일보가 ‘무궁화’를 제목으로 뽑은 대서특필 기사 총 48회(*대형화보 15회 포함)를 정리한 것이다.
1 동아일보 1920-05-06 조병무, 삼천리무궁화
2 동아일보 1920-07-09 평양무궁화 여전도대소식
3*(1) 동아일보 1921-07-22 가는비에저즌 무궁화, 작일 탑골공원에서(화보)
4 동아일보 1923-06-12 위생대강연회: 무궁화(신묘석)
5*(2) 동아일보 1923-08-18 비개인 아침에 새로 단장한 무궁화(화보)
6 동아일보 1923-09-16 진종혁 시드러가는 무궁화(일막)
7*(3) 동아일보 1923-09-16 시드러가는 무궁화(화보)
8*(4) 동아일보 1925-02-04 고흔꼿이야기 (四)무궁화(사진)
9*(5) 동아일보 1925-10-21 「조선국화」무궁화의 내력(사진)
10*(6) 동아일보 1926-08-20 무궁화는 잘도 핀다[화보]
11 동아일보 1926-09-17 동화회, 시천교 소년회와 무궁화사주체로
12 동아일보 1926-09-28 무궁화사 창립; 소년소녀 월간잡지「무궁화」발간
13 동아일보 1926-11-20 무궁화(십일월호), 무궁화사 발행
14 동아일보 1926-12-11 무궁화(십이월호), 무궁화사 발행
15 동아일보 1927-01-13 무궁화(1월1일발행), 무궁화사
16 동아일보 1927-02-14 무궁화주최의 새해놀이
17 동아일보 1927-02-25 조선동화집 「새로핀 무궁화」를 읽고서
18 동아일보 1927-02-25 조선동화집 「새로 핀 무궁화」를 읽고서, 作者 金麗順氏에게19 동아일보 1927-03-09 새로 핀 무궁화, 이학인형째 올님
20 동아일보 1927-03-26 「무궁화」속간, 어린이의 잡지
21 동아일보 1927-04-02 소년소녀웅변대회 경성 무궁화사에서
22 동아일보 1927-04-12 무궁화(제5호)
23 동아일보 1927-05-20 안주 무궁화 소년발표회
24 동아일보 1927-07-06 무궁화(7월호)
25*(7) 동아일보 1927-07-31 꼿철은 무궁화에…[화보]
26 동아일보 1927-08-29 무궁화(9월호)
27 동아일보 1927-09-22 소년연합회 축하웅변회 무궁화사 주최로
28 동아일보 1927-09-29 무궁화(10월호)
29 동아일보 1927-10-02 해발3천척 무궁화의 교기(장진, 상남학교)
30 동아일보 1927-12-15 무궁화(제11월호)
31 동아일보 1928-02-05 무궁화(2월호)
32 동아일보 1928-03-03 무궁화(3월호)
33 동아일보 1928-04-03 무궁화꽃을 팔어 학교건축비에, 조선여학원에서
34 동아일보 1928-04-07 무궁화소년회정기총회(안주)
35 동아일보 1928-04-23 무궁화소년회 1주년기념식
36 동아일보 1928-06-22 안주무궁화소년회창립기념
37*(9) 동아일보 1928-08-12 무궁화는 제철맛나[화보]
38*(10) 동아일보 1929-05-25 꼿로맨스; 무궁화(최영한)
39 동아일보 1931-08-26 날마다 새꼿을 피우는 무궁화[화보]
40 동아일보 1932-02-28 홍천모곡학교 학교의 경비로 무궁화묘목판매
41 동아일보 1933-03-29 한서 남궁억선생 쇠뿔산 개떡바위 밋 보리울촌 무궁화묘포에 선생을 차저서[제1회, 전3회](송병휘)
42) 동아일보 1933-03-30 한서 남궁억선생 쇠뿔산 개떡바위 밋 보리울촌 무궁화묘포에 선생을 차저서[제2회, 全3回](송병휘)
43 동아일보 1933-04-01 한서 남궁억선생 쇠뿔산 개떡바위 밋 보리울촌 무궁화묘포에 선생을 차저서[제3회, 全3回](송병휘)
44(*11) 동아일보 1933-08-26 초추의 화단에 군림하는 무궁화[화보]
45(*12) 동아일보 1933-09-23 약초(4) 무궁화[화보]
46(*13) 동아일보 1934-07-20 철 맞난 무궁화[화보]
47(*14) 동아일보 1935-08-30 사는데 애착심을 가진 무궁화[화보]
48(*15)동아일보 1936-08-20 만발한 무궁화, 문산「스케치」[화보]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각주
(1)*간도협약은 법적 권원이 없는 제3국에 의한 영토 처리이므로 국제법상 무효이다. 일제가 1909년 간도협약을 체결한 바탕이 된 1905년 을사늑약 역시 강압에 의한 것으로 원천 무효이다. 설사 을사늑약이 합법이라도 국제법상 보호조약이란 보호국이 외교권을 장악할 뿐, 피보호국의 영토처분권까지 갖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조약으로서 법적근거가 될 수 없다. 강효백,『중국의 습격』휴먼&북스, 2011. 174쪽
◆◇◆◇◆◇◆◇각주
(1)*간도협약은 법적 권원이 없는 제3국에 의한 영토 처리이므로 국제법상 무효이다. 일제가 1909년 간도협약을 체결한 바탕이 된 1905년 을사늑약 역시 강압에 의한 것으로 원천 무효이다. 설사 을사늑약이 합법이라도 국제법상 보호조약이란 보호국이 외교권을 장악할 뿐, 피보호국의 영토처분권까지 갖게 하는 것은 아니므로 조약으로서 법적근거가 될 수 없다. 강효백,『중국의 습격』휴먼&북스, 2011. 1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