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평양 남북정상회담] '비핵화'란 말도 좀 폐기해주세요
2018-09-18 10:24
빈섬 이상국의 '편집의눈' - 핵 아닌 것으로 만들기는 '연금술'?
오늘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모든 신문들의 눈이 벌써 평양으로 가 있는 듯 합니다. 이번 정상회담의 핵심의제는 비핵화입니다. 모든 신문들이 첫면 제목에 '비핵화'란 말을 쓰고 있습니다.
"비핵화 접점 찾기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경향신문)
문-김 비핵화 평양담판...빅딜 촉각(매일경제)
평양의 사흘···핵심은 핵이다/비핵화,남북정상회담 의제 첫 등장(조선일보)
비핵화 '빈칸' 두고...남북 정상 평양 담판 (동아일보)
오늘은 좀 단순한 질문으로 '편집의 눈'을 진행해볼까 합니다. 신문들이 저마다 말하는 '비핵화'란 말은 무슨 뜻일까요? 이게 우리말 맞나요? 이 말의 유래와 출처는 알기 어렵습니다. 한자어로 되어 있는 '비핵화'란 표현은 정작 중국에서는 쓰지 않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린 언제부턴가 Nuclear disarmament(핵 무장해제)를 비핵화란 말로 쓰고 있습니다. 비핵(非核)은 '핵이 아닌 것'을 말하고, 화(化)는 변화나 바뀌는 과정을 의미하니, 그 둘을 합하면 '핵이 아닌 것으로 바뀐다'는 말이 됩니다. 핵을 핵 아닌 것으로 바꾸는 것이 비핵화란 얘긴데, 이건 연금술이 아닐까요.
이 말이 핵무기를 없애는 것을 의미하려면, 중국식 표현인 무핵화(無核化)나 제핵(除核), 혹은 멸핵(滅核) 쯤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왜 '비핵화'란 말을 모두가 쓰게 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신문들도 거리낌없이 이 말을 씁니다. 우리가 알아듣기 가장 쉬운 말로 하자면, 핵제거(核除去), 핵폐기, 핵포기 정도면 충분합니다.
완전히 없애는 것과 점차적으로 없애가는 것을 구분하기 위해서라면, 제핵과 감핵(減核)이란 표현이면 될 것 같습니다. 좀 길게 쓰면 핵제거와 핵감축으로 쓰면 분명해지고요.
처음엔 낯설고 엉성했던 표현도, 자주 쓰면 그밖의 표현이 없는 것처럼 입에 달라붙어버립니다. 정체불명의 비핵화가 딱 그런 짝인 것 같습니다. 핵 아님으로 만들기? 이 희한한 결론을 내기 위해 남북정상이 머리를 맞대는 것일까요. 이제 역사적인 회담의 핵심 의제로까지 떠오른 이 의문의 낱말. 이것도 핵폐기와 동시에 폐기되어야 할 건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이상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