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찬 칼럼] 한중수교 26년 회고, 우리의 과제와 대응

2018-08-23 11:24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 겸 용인대 중국학과 교수


“중국은 우리에게 과연 어떤 존재인가요. 기회인가요? 위협인가요?”

요즘 많은 기업이 필자에게 묻는 질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성 스마트폰마저 중국시장에서 철수를 준비하고, 대부분의 기업들이 중국 시장 진출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 핵문제로 인해 시작된 사드 이슈는 한·중관계를 순식간에 냉각시켰고, 그로 인한 한·중관계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 한·중 수교 26년을 외교안보 및 경제적인 측면에서 회고하고, 새로운 양국 관계 비전과 대응전략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첫째,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 한·중 관계는 중국의 글로벌 패권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소용돌이쳐 왔다. 양국 간 경제관계가 급속히 성장해 온 반면, 외교안보 관계에서는 미·중 간 패권 헤게모니 전쟁의 프레임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전형적인 패러독스(Paradox, 모순·역설) 국면이다. 한·미동맹과 북·중혈맹의 구조적 관계가 한·중 관계의 운명과 방향성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는 1992년 수교 당시 수립한 선린우호관계(1992~1997)에서 시작해 전면적 협력 동반자관계(1998~2007), 전략적 협력 동반자관계(2008~2012),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 강화(2012~현재)로 단계별로 격상되고 있으나, 여전히 한·중 관계는 외부변수에 따라 요동치는 파트너 관계일 뿐이다.

동맹과 파트너는 외교적 관계에서 엄연한 차이가 있다. 한·중 간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의미는 양국의 문제뿐만 아니라 지역 및 세계적인 이슈와 문제에 대해서도 협력하는 관계다. 그 이슈와 문제가 자국의 이익과 안보에 영향을 미칠 경우, 언제든지 동반자 파트너 관계는 위축될 수 있다는 뜻이다. 한·미동맹과 북·중혈맹 간 선택의 딜레마에 갇혀 있을 경우 한·중 관계는 향후에도 살얼음판을 걸을 수밖에 없다. 한반도를 둘러싼 패권싸움에 한국이 외재화된 역할론만으로는 결코 출구를 찾을 수 없다. 잃어버린 내재화된 동력을 회복하는 데 더욱 집중해야 한다. 중국이 북한을 미·중 패권의 완충지대(Buffer Zone)로 활용하듯이, 우리도 북한에 대한 지렛대를 더욱 강화해 나가야만 한·중 관계의 균형점을 찾을 수 있다.

한국은 결코 미·중의 패권 경쟁에 끼어들 필요가 없고, 양국을 모두 만족시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한반도 이슈에 있어 한국의 역할이 필요하게끔 하는 포지셔닝 전략과 밀당의 지혜가 필요하다. 한·중 간 외교안보 관계의 방향은 한국이 종속변수가 아니라 독립변수가 될 때 비로소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경제적인 측면에서 한·중 관계는 지리적 인접성, 경제적 상호보완성, 문화적 동질감의 효과로 인해 교역, 투자, 인적 교류 등 분야에서 매우 빠른 성장을 이뤘고, 양국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1992년 수교 당시 4%에 불과했던 대중국 교역의존도가 2000년 9.4%, 2005년 18.4%, 2017년에는 23%로 급증했다. 홍콩을 경유해 중국으로 들어가는 비중까지 포함하면 약 27%에 해당한다.

수출로 성장한 한국경제의 약 3분의1이 중국(홍콩 포함)에 의지하고 있다는 소리다. 중국이 우리에게 무한한 시장이고, 경제성장의 가장 중요한 국가임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 들어 양국 간 경제관계가 결코 심상치 않아 보인다. 표면적으로 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대중 무역흑자가 443억 달러로 변함없는 우리의 최대 수출 국가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반도체와 일부 화학 및 디스플레이 제품을 제외하면 전반적으로 한국제품의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한·중 간 교역관계는 크게 3단계로 나눠져 성장 변화됐다. 1단계(1992~2000년)는 과거 우리가 공산품을 수출하고, 중국이 농산품을 수출하는 수직적 산업 간 분업(inter-industry trade) 구조였고, 2단계(2001~2010년)는 요소집약도가 동일한 제품군으로 구성되는 특정 산업 내에서 수출과 수입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산업 내 분업(intra-industry trade) 구조로 변화됐다. 한국과 중국 모두 IT산업 관련 제품을 거래하는 무역구조로, 한국은 상위 IT제품, 중국은 중하위 IT제품을 생산하는 일종의 산업 내 분업 시스템이었다. 3단계(2001~현재)는 분업구조에서 본격적으로 경쟁관계로 들어가는 수평적 품목 내 무역(Intra-item trade) 구조로, 유사품목 간 경합도가 치열해지고 있다. 반도체, 조선, 선박, 철강, IT, 디스플레이 등 한국 8대 주력산업 중에서 반도체 및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등 일부 산업군을 제외하고 대부분 중국과 경쟁관계로 급속히 재편되고 있다.

중국 기업의 혁신성장과 시장의 급변 속에 향후 한·중 경쟁관계는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은 수입중간재 대신 자국산을 사용해 완제품을 생산하는 이른바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을 더욱 확대해 나갈 것이다. 적극적인 규제완화와 지원을 통해 미래성장 동력기술과 인적자원을 발굴하는 게 시급하다. 일방적인 짝사랑을 해서는 안 된다,

중국이 필요한 부분을 활용해 향후 10년을 내다보는 산업기술우위 접근방법을 그려야 한다. 중국과의 전략적인 기술협력의 토대 위에 양국 공동의 산업표준 시스템을 구축해야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짝사랑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양국 간의 진정한 소통이 필요하다. 소통이 부재하면 정치·외교·경제·문화 등 그 무엇도 발전할 수 없다. 한·중 간 소통의 대화채널을 좀 더 다각화·유연화시켜 나가야 한다. 중국 전문인재를 과감히 등용하고, 중장기적인 대중국 마스터플랜을 구상해야 한다. 한국과 중국은 함께 가야 할 숙명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승찬 소장/교수
중국 칭화대 경영학 박사
전 대한민국 주중국 대사관 경제통상관
전 미국 듀크대학교 경영대학원 교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