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대통령, 反유로 경제장관 임용 거부..헌정위기 가나

2018-05-28 15:11
스페인도 정치불안, 남유럽발 경제위기에 투자자 이탈

2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로마 소재 대통령궁에서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이 주세페 콘테 총리 지명자와의 면담 후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마타렐라 대통령은 반유럽연합(EU) 성향의 파올로 사노바 경제장관 지명자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혔다. [사진=AP/연합]


유로존 3위 경제국인 이탈리아가 내각 구성을 두고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과 포퓰리즘 연합정부 정당과의 갈등이 커지면서 헌정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유로존 4위 경제국인 스페인도 정치적 불확실성으로 투자가들이 이탈, 남유럽발 경제위기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BBC와 가디언 등 주요 외신의 보도에 따르면 27일(현지시간) 마타렐라 대통령은 주세페 콘테 총리 지명자와의 면담 후 기자회견을 갖고, 콘테의 내각 구성안에 동의하지만 대표적인 유로 회의론자인 파올로 사보나를 재정경제장관으로 임용하는 안은 승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콘테 총리 지명자는 대통령의 결정에 반발해 정부 구성권을 반납했다. 사보나를 경제장관으로 적극 밀었던 연정 구성의 두 축인 오성운동과 동맹 역시 대통령의 결정을 수용할 수 없다며 대통령 탄핵을 거론하고 있다.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탈리아는 3월 4일 총선 이후 11주가 넘도록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주 오성운동과 동맹이 총리로 추대한 콘테 지명자는 마타렐라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 승인을 받고 내각 구성에 착수했다. 콘테 지명자는 오성운동 및 동맹과의 논의 끝에 만든 내각 구성안을 대통령에게 제출했지만 마타렐라 대통령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EU 수호자를 자처한 마타렐라 대통령이 문제 삼은 사람은 사보나 경제장관 지명자다. 1990년대 이탈리아 산업장관을 역임했던 사보나는 노골적으로 유럽연합(EU)과 긴축정책을 비판하면서 유로존 탈퇴를 요구해왔다. 그가 경제장관을 맡을 경우 이탈리아가 EU와의 재정 약속을 깨고 정부 지출을 늘려 부채 문제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현재 이탈리아의 재정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1.3배로 유로존 가운데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포퓰리즘 정부의 출범으로 국내외 투자자들의 불안이 높아지면서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독일 10년물 국채와 이탈리아의 10년물 국채 금리 스프레드가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포퓰리즘 연정이 재정지출 확대, 세금 인하 등을 예고하면서 최근 이탈리아 금융시장은 요동쳤다. 지난주 이탈리아 대형 은행들의 주가가 줄줄이 폭락했고, 25일에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국채 금리 스프레드가 215bp를 기록하며 4년래 최고치를 찍었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불확실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 국채를 매도하고 안전한 독일 국채를 매입한 영향이다. 국제적인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을 'Baa2'에서 정크 등급의 바로 윗 단계인 'Baa3'으로 강등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사보나 경제장관 지명자는 자신을 향한 우려를 의식한 듯 27일 성명을 통해 EU를 떠받치는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리스본 조약을 준수하고 세금 인상이나 지출 감축이 아닌 경제 성장을 통해 부채 삭감을 이뤄가겠다고 밝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그러나 마타렐라 대통령은 카를로 코타렐리 전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총리로 기술관료 정부를 꾸리는 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마타렐라 대통령은 28일 코타렐리를 대통령궁으로 불러들였다. 코타렐리는 2008년부터 2013년까지 IMF에서 일했으며 이탈리아에서 공공지출의 삭감을 밀어붙여 "미스터 가위(Sciccors)"라는 별명이 있다. 사보나와는 완전히 정책적으로 반대편에 있는 인물인 셈이다. 

코타렐리가 총리를 맡을 경우 조기총선이 불가피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의회 과반이 코타렐리 정부를 지지하지 않을 경우 정책 운영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조기총선을 치를 경우 유로존과 EU에서 이탈리아의 지위가 선거의 핵심 이슈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로이터는 현지 여론조사를 인용, 조기 총선이 실시될 경우 3월 총선에서 17%를 득표했던 동맹은 득표율이 오르고, 33%를 차지했던 오성운동은 35% 득표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스페인 역시 정치적 불확실성이 고조되면서  25일 국채 금리가 작년 9월 이후 일일 최대 상승폭을 기록하고 증시 벤치마크 지수인 Ibex-35는 1.7% 미끄러졌다.

스페인 제1 야당인 사회당은 25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라호이 총리가 속한 중도 우파 인민당이 불법 선거자금 조성 혐의가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다. 만약 총리 불신임 결의안이 의회 표결에서 가결되면 스페인 역시 조기 총선을 치러야 한다.

다만 블룸버그는 28일 사회당의 라호이 총리 불신임 결의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다른 여당들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라호이 총리는 자진 사퇴나 조기 총선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