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 한국민족악무사(韓國民族樂舞史)
2018-02-13 12:06
이민홍 지음 |성균관대학교출판부 펴냄
음악은 여러 문화 활동 중에서도 사람의 마음을 휘돌게 하고 맴돌게 하고, 소용돌이치게 하는 힘이 가장 센 장르다. 실제로 동양의 성군들은 음악과 예의라는 두 개의 도구로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달성하곤 했다. 예악정치(禮樂政治)라는 말이 회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요임금은 대장(大章), 순임금은 대소(大韶), 우임금은 대하(大夏), 탕임금은 대호(大濩)라는 '악무'(樂舞)로서 태평 시대를 구가했다.
조선 시대에도 예악정치의 유교적 이념에 따라 국가의례와 백성 교화를 목적으로 한 악무가 중시됐는데, 세종대왕이 직접 보태평(保太平), 정대업(定大業), 여민락(與民樂) 등의 음악을 작곡해 한세상을 꽃피운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요즘엔 악무를 쉬이 접할 수 없지만, 특정한 날이나 국가적으로 기념할 만한 이슈가 있을 때 성균관 등지에서 열리는 석전대제(釋奠大祭·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 악무로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유교문화예술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석전대제는 특히 한국에서 그 원형이 잘 보전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12년엔 한·중수교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의 석전대제를 중국 산둥대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석전대제의 '역수출'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이 교수는 민족악무의 미학적 기반부터 살펴 나가는데, 시대적으로는 고대악무·삼국악무·가야악무·발해악무·고려악무·조선조 악무·악장·단가(시조)·한류악무(韓流樂舞)을, 분야별로는 무(舞)·가(歌)·요(謠)·곡(曲)을 다룬다. '무'의 개념도 5천 년간 전승된 민족의 춤 모두가 포괄될 정도로 광범위하다.
민족악무 고찰을 위해 저자는 《삼국사기》 등 우리 사서를 비롯해 《악서》, 《25사》 등 다양한 동아시아 사서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동아시아 제국은 악은 정치와 직결되어 있다(樂與政通)는 확신, 악무로 백성을 교화(用樂化民)했다는 사실 등은 저자의 치밀함이 빚어낸 결과물로, 악무에 대한 새삼스러운 통찰을 하게 만든다.
중원의 《삼국지》 〈동이전〉에 나오는 부여 등 삼한제국의 악무 이야기는 눈길을 끈다. 저자는 중원왕조가 우리 겨레와 소위 사이(四夷)의 풍속과 악무를 조사해 기록한 것은 일종의 정보문서로, 사이를 복속시키려는 전략의 하나일 것이라고 해석한다. 부여를 위시한 예맥, 옥저, 삼한,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기사에 밤새워 노래하고 춤췄다는 기록은 비록 제천(祭天)과 축전(祝典) 등에 연계된 것이긴 해도, 악무에 관한 한 우리 민족의 심성에 이 같은 인자가 고착돼 길이 유전되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분석도 흥미롭다.
이 밖에 역대왕조의 개국시조인 환인‧환웅‧단군의 삼성사(三聖祠), 단군의 숭령전(崇靈殿), 기자의 숭인전(崇仁殿), 박혁거세의 숭덕전(崇德殿), 동명성왕의 주몽사((朱蒙祠), 수로왕의 숭선전(崇善殿), 온조왕의 숭렬전(崇烈殿), 왕태조의 숭의전(崇義殿)을 계승적 차원에서 해당지역에 조성하고, 국가가 제사를 지낸 것도 악무와 함께 민족통합의 일환으로 진단한 대목도 주목할 만하다.
5천 년 역사를 통해 전승된 민족악무 대부분은 예악론과 맥락이 닿는다. 예악론은 고대·중세의 우리 민족국가의 통치이념이었고 종교였으며 문화의 본질이기도 했다. 저자는 민족예악, 동아시아 예악론과 직결된 악무를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다만, 고대·중세악무는 실증주의적 연구방법에만 의존하면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는 점을 감안해, 경우에 따라 실증주의의 극복과 초극을 과감하게 시도한다.
700쪽에 달하는 전문(專門) 악무 이야기라고 볼 수도 있지만, 저자가 가리키는 것은 결국 우리 전통문화, 더 나아가 세계 속의 한국 문화라는 것을 깨치게 된다.
692쪽 | 4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