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염력'은 심은경도 춤추게 한다
2018-02-02 07:00
그런 심은경에게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은 쉼표 같은 존재.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아빠 석헌(류승룡 분)과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빠진 딸 루미(심은경 분)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그에게 현장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첫 번째 영화였다.
“이런 현장은 처음이었어요. 그야말로 최고였죠. 마음껏 즐긴다는 느낌? 감독님께서 배우, 스태프들을 잘 지휘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강압적이지 않고 유하게요. 일의 능률을 높여주시는 것 같아요. 스태프들의 노고를 잊지 않고 늘 챙겨주시는 걸 보면서 큰 감동을 받기도 했어요. ‘공감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런 점을 저 역시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웃음과 배려가 가득했던 ‘염력’ 현장은 또래답지 않게 진중한 심은경을 변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는 연 감독에게 “감독님 내 마음속에 저장!” 같은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하고, “감독님의 다음 작품에도 함께하기로 약속” 같은 애교도 떨게 했다.
“(정)유미 언니와 그런 얘기도 했어요. ‘우리 끝까지 감독님만 쫓아가자’라고요. 하하하. 바로 다음 작품은 아니어도 다음다음 작품이라도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러한 변화는 심은경의 연기에도 고스란히 영향을 미쳤다. 그간 성격이 강한 캐릭터를 연기해왔던 그는 현실에 발붙인 ‘있을 법한’ 인물을 연기하며 연기적으로도 변화를 맞게 되었다.
“배우라면 유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어떤 틀에 갇혀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기적인 고민이 있었고, 심경 변화도 느꼈었죠.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보고 싶던 찰나에 ‘염력’을 만나게 된 거예요. 시나리오 속 루미는 단순하게 표현돼있었지만, 오히려 그 점이 마음에 들었어요. 감독님과 만나 루미를 채워 넣고, 이전과 다르게 표현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해온 연기를 한 번 더 비틀어서 응용했어요. 제에게도 새로운 발견이었죠. 촬영하면서 이제껏 보지 못했던 제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어요. 개인적으로는 좋아하는 장면들도 있고요. 이제 판단은 관객들의 몫인 것 같아요. 아무쪼록 진심을 담아 연기 했으니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심은경에게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염력’은 어떻게 그와 인연이 된 걸까? 그는 2016년 천만 관객을 동원한 연 감독의 ‘부산행’을 언급, 그 작품을 시작으로 연을 맺게 되었다고 밝혔다.
“‘부산행’ 촬영 때 이 프로젝트에 관해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부산행’으로 좀비 역할을 하고, ‘서울역’으로 더빙 호흡도 같이 맞추었는데 더 길게, 제대로 된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감독님께 ‘다음 작품도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더니 바로 ‘내가 신 배우 주연인 영화를 준비 중이니 기다리라’고 하시더라고요. 일주일 정도 걸리려나 했었는데 6개월을 기다리게 되었어요. 하하하”
긴 시간을 기다려 만나게 된 ‘염력’의 첫인상은 ‘연상호 감독답다’는 것이었다. 생소한 소재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염력’이라니 너무 생소하잖아요. 이게 어떤 그림으로 나올지 모르겠더라고요. 상사도 잘 안 갔어요. ‘이건 감독님의 세계관을 이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감독님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려고 했어요. 영화를 준비하게 된 의도부터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색깔, 장르, 캐릭터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하나 잡아가기 시작했죠.”
그리하여 심은경은 앞서 언급한 대로 루미를 가장 현실적인, 어디선가 살고 있을 법한 인물로 표현하고자 했다.
“‘수상한 그녀’나 ‘걷기왕’도 캐릭터 자체가 평범하지는 않았어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루미는 어딘가에 살고 있을 듯한 인물이라 현실감을 주고 싶었어요. 다큐멘터리에 있을 것 같은 시민의 모습을 그려내려고 했죠. 사실 이런 연기를 한 번쯤 해보고 싶었거든요. 감독님께 ‘리얼한 걸 구현하고 싶다’고 했더니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해주셨어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루미와 제가 생각하는 루미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더 레슬러’를 레퍼런스로 삼고 참고도 했었어요. 영화 속 미키 루크와 딸의 관계를 영화에 많이 녹여내려고 했죠.”
냉혹한 현실을 겪는 아빠와 딸의 모습. 심은경은 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사람의 관계를 ‘염력’에 녹여내고자 했다. 이는 석헌 역의 류승룡이 있기에 가능했다. 벌써 7번째 같은 작품을 하는 류승룡과 심은경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은” 차진 연기 호흡을 자랑했다.
“류승룡 선배님과는 정말 잘 맞아요. ‘불신지옥’ 때 처음 뵙고 ‘퀴즈왕’, 애니메이션 더빙에 ‘염력’까지 벌써 7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거든요. 친숙하고 딱 맞아떨어지는데 그러면서도 직접적 관계가 있는 건 이 작품이 처음이라 새로운 기분이 들어요.”
심은경은 류승룡에 관해 “늘 배려해주는 선배”라고 표현했다. 심은경의 연기를 보고 즉각적인 리액션을 취해주는 그는 심은경이 준비될 수 있게 항상 기다림을 갖는다고.
“류승룡 선배님을 보면서 항상 ‘나도 저런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고민을 할 때면 옆에 오셔서 다독거려주시거나 본인의 이야기를 많이 해주세요. 제가 무뚝뚝한 편이라 표현을 잘 못 하는데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선배님을 보면서 ‘나도 따듯하게 감싸주고, 웃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심은경은 수많은 ‘흔들림’을 겪었고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고 전했다. 배우 심은경도, 인간 심은경도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 덜어내고, 이겨내고, 비워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언제쯤인지 모르겠는데 지금보다 더 어리고 미성숙했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고, 해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느껴지는 부분도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깨달아가는 것도 있어요. 아직도 잘 모르지만요. 물론 지금도 고민은 많아요. 자신감이 하락할 때도 있고, 재능에 대해 고민할 때도 있죠. 연기를 그만두어야 할까 고민도 했었는데 문득 ‘연기하는 게 너무 좋고 현장에 있는 게 행복한데 그것만으로도 계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염력’ 덕이죠. 너무 고마운 작품이에요. 관객들도 이런 좋은 기운을 얻어가고 또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바람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