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신과함께' '1987' 하정우
2017-12-26 17:48
비슷한 시기 개봉한 영화 ‘신과함께-죄와 벌’(감독 김용화)과 ‘1987’(감독 장준환) 역시 마찬가지. 태연한 얼굴로 양극단을 오가는 장르·캐릭터를 선보이며 또 한 번 관객들을 쥐락펴락했다.
“비슷한 시기에 제가 출연한 영화 ‘신과함께’와 ‘1987’이 개봉하게 됐어요. 한 달 차를 두고 개봉한 적은 있었는데 이렇게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건 처음이에요. 언론시사회를 이틀 연속했는데 만만치 않은 일이더라고요. 동시기 개봉으로 힘든 건 두 팀 사이에 걸쳐져 있다는 점이죠. ‘신과 함께’ 팀은 ‘1987’을, ‘1987’ 팀은 ‘신과 함께’를 궁금해하는데 가운데에 껴서 적당히 대답하고 있어요. 하하하. 시원하게 말하기가 어렵더라고요. 거기다 ‘강철비’는 저희 소속사인 정우성 대표님의 작품이고…. 애꿎은 ‘스타워즈’만 얘기하는 중이에요.”
두 작품 “가운데 껴서”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신과 함께’와 ‘1987’이 너무도 다른 색깔과 장르를 가졌다는 점이다. 하정우는 각각 저승차사 강림과 부검을 밀어붙이는 서울지검 최검사 역을 맡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판타지 장르의 ‘신과 함께’에서는 묵직하니 극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무거운 실화 소재를 담은 ‘1987’에서는 가볍고 유연한 캐릭터를 그려냈다.
‘신과 함께’에서 하정우는 망자의 환생을 책임지는 삼차사의 리더이자 변호사 강림 역을 맡았다. 뛰어난 언변과 위기 대처 능력으로 지금껏 47명의 망자를 환생시킨 인물이다. 19년 만에 등장한 정의로운 망자 자홍덕에 재판은 수월히 통과하겠다는 기대에 사로잡혀있었으나 하나둘 드러나는 그의 과거로 예상치 못한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설상가상 이승에서 원귀가 나타나 자홍의 재판을 어지럽히고, 자홍과 원귀의 얽힌 관계가 드러나면서 강림은 차사와 변호사 경력 최고의 위기에 놓인다.
“강림 캐릭터는 2부까지 보셔야 이해가 가실 것 같아요. 1부에서는 자홍을 데리고 재판하러 다니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2부에서는 1000년 전 기억과 트라우마가 등장하거든요. 삼차사와의 관계나 그들이 어떻게 차사가 되었는지 뚜렷하게 담기죠. 1부로만은 강림의 캐릭터를 알 수가 없어요.”
“강림 입장에서의 아쉬움은 있지만 구조 자체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에요. 크게 아쉽다기보다는 ‘기다려 달라’고 밖에 할 수 없어요. 영화의 만듦새 같은 건 개인의 취향이고요. 영화는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거든요. 저는 이 영화의 장점을 보려고 해요. 제 입장에서 아쉬운 점을 이야기도 그렇잖아요? ‘신과 함께’든 ‘1987’이든요.”
영화 ‘1987’은 1987년 1월, 스물두 살 대학생이 경찰 조사 도중 사망하고 사건의 진상이 은폐되자 진실을 밝히기 위해 용기 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극 중 하정우는 화장 동의를 거부하고 부검을 밀어붙이는 서울지검 최 검사 역을 맡았다. 진상 규명의 첫 단추를 끼우는 최 검사는 ‘신과 함께’ 강림과 달리 유연하고 능청스러운 캐릭터 묘사가 눈에 띈다.
“실존 인물과는 다른 성격이에요. 검사님이 그 시대에 그런 일을 한 건 맞지만 캐릭터의 성격과는 다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영화적 재미를 주기 위해서 재구성된 부분이 있죠. 묵직한 스토리고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서 영화가 긴장감 속에서 시작하게 되면 관객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요. 편하게 유도하기 위해서 최 검사를 가볍게 설정했던 거죠.”
묵직한 작품 속, 관객들의 숨통을 트이게 만드는 캐릭터를 구축했던 것은 배우 하정우의 장점이자 강점이었다. 영화 ‘1987’의 경우, 하정우의 강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왔던 터.
“그런 면 때문에 장 감독님이 이 작품을 제게 제의하신 거죠. 시나리오를 봤을 때 대사들이 제 입에 안 붙더라고요. 제 식대로 수정해도 되냐고 여쭤보면서 위트를 더 강화해도 되겠냐고 했더니 그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박처장에 ‘너 김일성이네?’하고 놀리는 장면이나 서류철로 때리는 장면 등을 제 식대로 첨가했죠.”
실화를 소재로 한 묵직한 드라마 속, 코미디를 연기하기란 쉽지 않았던 상황. 이질적일 수 있는 인물을 작품에 녹여내기 위해 하정우는 어떤 노력을 기울였을까?
“제가 극 초반에 등장한 것도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기 위해서’죠. 이 영화는 두 가지 결을 가지고 있거든요. 제가 퇴장하고 밀도가 높아지면서 (유)해진 형의 라인이 살아나죠. 그 뒤를 (김)태리와 (강)동원에게 넘어가면서 드라마를 완성하는 거예요. 감독님께 ‘최 검사를 어느 정도까지 풀면서 갈 수 있느냐’고 물었어요. 영화의 톤이 튀면 안 되니까 조율을 하기 위해서였죠.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가벼움을 줄여나갔어요.”
하정우의 영화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먹방’이다. 영화 ‘신과 함께’와 ‘1987’ 역시 마찬가지.
“저를 캐스팅하는 감독님들은 한 번씩 (먹방에 대해) 생각하시는 거 같아요. 매 작품마다 먹방신이 있으니까요. ‘신과 함께’는 육개장을 먹는데, ‘이걸 굳이 왜 넣었을까? 맥락상 필요 없는데’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관객들이 편하게 다가가기 위해서 장치로 사용하신 것 같아요. ‘1987’은 짜장면 신인데 끝내 먹지 못하죠. ‘먹방’을 하지는 못했어요. 친구들은 ‘1987’을 보면서 ‘먹나? 안 먹나?’ 묘한 긴장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유연한 인물이지만 강직하고 소신 있는 인물을 연기해낸 하정우에게 “타협하지 않는 것”을 물었다. 캐릭터들을 뒤로하고 배우로서, 인간 하정우로서 가지는 면면들이 궁금해졌다.
“타협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이에요. 저 자신에게 점점 더요. 하지만 타인에게는 더 허물어지는 것 같아요. 제게 버릴 수 없는 원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정직이에요. 인간의 법망은 피할 수 있으나 하늘의 법망은 피할 수 없다고 믿고 있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무조건 심판받게 되어있어요. 죄를 지어서 1년은 버틸 수 있어도 그 이후는 버틸 수 없다는 믿음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