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仁차이나 프리즘] 中·라오스 국경을 가로지르는 사람들
2017-11-30 09:59
중국에서 동남아로 이어지는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건설현장을 한·중 공동조사팀과 함께 돌아봤다. 라오스와의 접경지역에는 양국을 오가는 트럭이 끝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철도 건설로 국경지대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고, 중국과 주위 국가들의 경제적 통합은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그것은 과연 중국을 향한 일방적 통합일까? 이런 변화는 국경지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 조사팀은 이 질문을 안고 국경지대에서 조사를 계속 진행해왔다.
공동조사팀이 집중적으로 현지조사를 하고 있는 지역은 본래 하나의 민족이 오랫동안 살며 공동체를 이뤄온 생활권 위에 인위적으로 국경이 그어져 중국과 라오스로 나뉜 곳이다. 사람들의 일상생활을 장기간 관찰해본 결과, 국경이 기존의 민족 생활공간을 둘로 나눴지만 여전히 그 공간은 생활권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왕래가 아무런 제약도 없이 이뤄지는 건 아니다. 국가의 관리는 점점 제도화되고 있고, 변경지역 소수민족 촌민들에게는 현재 특수한 통행증이 발급된다. 이 통행증을 활용해 이들은 내지인보다 훨씬 자유롭게 국경을 드나들고 소지품도 크게 제약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양국 사이에서 일종의 중개무역을 하는 중요한 행위자로 활동한다.
이렇듯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국경 너머 ‘타국’의 동족과 오랫동안 만들어온 사회·경제·문화 네트워크가 지금도 작동한다는 사실은 이 마을에서 라오스 부인과의 결혼이 꾸준히 이뤄진 데서도 드러난다.
마을의 한 노인은 일 때문에 라오스에 자주 오가다 보니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서 아들에게 가보라고 했다. 1~2시간이면 갈 수 있기 때문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아들은 가서 첫눈에 서로 반해서 3주 만에 결혼을 했다.
라오스와 중국 두 지역 각각에서 결혼식을 치르기 때문에 한국 돈으로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이 결혼에 들어가지만, 이들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같은 민족으로 결혼풍습도 비슷해 결혼식 과정에서도 충돌은 없다. 다만 라오스 쪽이 중국에 비해 결혼식 때 흥겹게 춤추는 것을 중시해 악대를 부르는 비용이 좀 더 든다. 라오스와 국제결혼을 한 가정은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없고, 명절이나 축제 때는 서로 오가며 지낸다.
이렇듯 두 국가로 나뉜 민족은 예전부터 존재해 온 사회·경제·문화적 생활권을 여전히 유지하며 살고 있다. 중간에 그어진 국경선도 이들의 왕래나 생활에 큰 제약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특히 이들이 양국을 오갈 때 수속이 일반인에 비해 매우 간편하다는 점은 국경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그렇다고 해서 접경지역에서 국경이 의미가 없다거나, 국가의 통제가 약하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낭만화의 오류’다.
중국은 변경지역들에 대해 지역마다 다르게 특수한 관리를 하고 있다. 자유롭게 경계를 넘나드는 듯 보이는 행동은 결코 국가의 관리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남쪽에서 국경을 맞댄 나라들과 앞으로 더 활발해질 공식·비공식 교류가 국경지대를, 그리고 주변 국가와 중국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동남아에 중국이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경제적 통합이 이뤄지고 있지만, 사실 중국과 동남아는 이미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정치·경제·문화적 관계가 밀접했던 일종의 ‘권역’이다.
이 권역에서 중국이 상대적으로 중심적 지위를 가졌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중심성은 결코 고정불변도, 일방적인 것도 아니었다.
동남아시아 권역을 비롯해 동아시아를 이루는 여러 권역이 각각 오랫동안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움직여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중국과 주변국의 국가 간 교류가 어떤 방향으로 ‘통합’되는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된다.
반대로 국가들을 가로지르는 민족과 문화의 역사가 각 권역에서 어떤 ‘다원성’과 ‘역동성’을 만들어 내는지를 보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다원성과 역동성에 주목했을 때 국가 간 역학관계에서 시각을 더 넓혀 이질적 문화권으로 구성된 복합적 공간인 동아시아 지형의 변화가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