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는 지금] 리창 신임 당서기의 '상하이 인연'
2017-11-16 11:00
장쑤성 당서기 시절 난퉁에 공들여
상하이로 통하는 입구로 만든 전력
상하이로 통하는 입구로 만든 전력
이번 당대회를 통해 상무위원회에 진입한 한정(韓正) 전 상하이시 당서기가 직접 “리창(李强) 동지를 상하이시위원회 당서기에 임명한다”며 당 중앙의 결정을 통보했다.
리창 신임 상하이시 당서기는 취임연설을 통해 “상하이는 혁명 전통을 간직한 도시로서 중국 공산당 역사에서 중요한 위상을 점하고 있다”며 당 역사의 맥락에서 상하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리창 서기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푸둥(浦東)이다. 푸둥은 중국 공산당 제1차 당대회가 열렸던 ‘일대회지(一大会址)’의 소재지다.
리 서기는 이곳에서 19차 당대회 정신을 학습, 토론하는 좌담회를 열고 19차 당대회를 통해 당이 표명한 목표와 임무를 착실히 숙지, 실천할 것을 독려했다.
이러한 리창 서기의 행보와 맞물려 최근 교통(交通)대를 비롯한 상하이 유수의 대학들에서는 ‘시진핑(習近平)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와 관련된 연구토론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당대 중국의 지방 지도부 선발은 크게 3가지 사례로 나눠 볼 수 있다.
첫째는 현지 간부가 에스컬레이터 식으로 영전하는 사례다. 한정 전 상하이시 서기, 현 상무위원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특정 지역에서 고위직을 지낸 간부가 타 지역의 지도부로 발령받아 오는 경우다.
시진핑 주석만 해도 2007년 중앙정치국에 진입하기 전까지 허베이성(河北省), 푸젠성(福建省), 저장성(浙江省), 상하이 등 다수의 지방에서 지도부직을 역임했다.
최근 ‘시자쥔(習家軍)’으로 불리는 시 주석의 인적 네트워크는 이러한 일련의 경험을 통해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셋째로는 중앙 부서에서 근무하던 간부가 지방 지도부로 부임하는 사례가 있다. 더러는 국유기업의 고위 간부가 지방 지도부로 임명되기도 한다. 중국의 ‘철혈재상(鐵血宰相)’으로 유명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가 이 사례에 해당한다.
18차 당대회 이후로 현지 간부의 에스컬레이터 식 승진 사례는 줄어들고, 타 지역 간부의 이직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리창 서기는 두 번째 경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리창 서기는 1959년생으로 저장성 뤼안(瑞安)에서 출생했다. 고향의 한 설비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하다 1983년 현(縣)위원회 간부를 맡은 것을 계기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30여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주로 저장성과 장쑤성(江蘇省) 등 장난(江南, 양쯔강 이남 지역의 총칭)지역에서 활동하며 현지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상하이 또한 과거 장쑤성에 속했던 도시인 만큼 리창 서기의 그간 활동 반경과 거리가 멀지 않다. 그뿐만 아니라 리 서기는 진작부터 상하이에 남다른 관심을 보여 왔다.
그는 장쑤성 당서기 시절 창장(長江)삼각주 북단에 위치한 도시인 난퉁(南通)을 이례적으로 수차례 시찰해 화제를 모았다.
일각에서는 리창 서기가 난퉁 지역을 편애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난퉁 발전에 유독 공을 들인 까닭은 상하이에 인접한 접근성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리 서기는 난퉁의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정책 연구와 프로젝트, 인재 교류 등 다양한 부문에서 상하이시와 협력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난퉁을 상하이로 통하는 입구로 만들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이처럼 타 지역 출신 간부임에도 불구하고 상하이 현지에 대한 리 서기의 이해도와 친밀도는 현지 출신 간부 못지않다. 따라서 별다른 위화감 없이 해당 직무를 수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더불어 리창 서기는 2004년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재직할 무렵 비서직을 맡았던 인연을 계기로 ‘직접’ 검증된 인물이라는 강점이 있다.
이 밖에도 저장성 공산주의청년단 간부로 활동한 경력이 있어 보다 다양한 계파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요건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강점을 바탕으로 가시적인 시정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이후 천민얼(陳敏爾)에 버금가는 존재감을 표출할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