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I의 중국 대중문화 읽기⑰] 우울한 홍콩의 현실, 영화 ‘십년’·‘트리비사’에 있다

2017-10-12 11:00

[영화 '십년' 포스터]

[영화 '트리비사' 한국 포스터]

얼마 전 홍콩영화가 한 편 개봉됐지만, 한국 시장에서는 맥을 못 추고 사라졌다. 두치펑(杜琪峰)이 제작을 맡고 세 명의 신진감독 쉬쉐원(許學文), 황웨이제(黄偉傑), 오우원제(歐文傑)가 공동 연출한 ‘트리비사(Trivisa·樹大招風)’다.

오우원제 감독은 문제적 영화 ‘십년(十年)’ 에서 ‘방언(方言)’을 연출한 인물이다. ‘트리비사’는 그간 소문만 무성했지만 중국 내 관객들에게 접근이 용이치 않았던 영화 ‘십년’이 만들어 낸 기존 질서의 틈을 힘겹게 벌리고 들어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십년’은 현재를 바탕으로 상상한 10년 후 홍콩의 미래를 어둡게 예견한 다섯 편의 옴니버스 영화다. 일시에 홍콩인들의 공감을 이끌었고, 2016년 홍콩 금상장(金像獎)영화제 대상을 수상하면서 중국 정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영화 속에 드러나는 주된 정조는 ‘공포’다. 공포대상은 매우 구체적이다. 바로 ‘홍색체제’다. 한마디로 말해서 ‘십년’은 홍색체제에 대한 공포가 만들어 낸 십년 후 홍콩에 대한 암울한 예언서다.

영화는 △언론과 정치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안전법의 도입을 위한 정치적 계략을 담은 ‘부과(浮瓜)’ △사라져가는 홍콩의 모든 것을 표본으로 만드는 남녀를 다룬 ‘동선(冬蟬)’ △중국 표준어 사용이 의무화된 가운데 광둥어 밖에 모르는 택시 운전사가 겪는 곤경을 그린 ‘방언(方言)’ △중국인이 아닌 홍콩인으로 살기 위해 분신을 선택하는 이야기를 그린 ‘자분자(自焚者)’ △중국식 교육을 받은 자녀들이 동자군(童子軍)이 돼 홍콩의 독자적인 문화를 억압하는 이야기를 담은 ‘본지단(本地蛋)’ 등으로 구성돼 있다.

2025년을 시간의 축으로 설정해 놓고, 홍콩 정체성이 상실되고 중국의 통제가 강화된 상황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십년’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격인 환구시보(環球時報)를 통해 ‘사상 바이러스’로 규정됐고, 중국 내 상영 금지 처분을 받았다. 실제 중국은 2016년 영화제 시상식에 앞서 ‘십년’에 대한 보도를 자제하고 시상식 중계도 금지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2017년 금상장 영화제에서 작품상 포함 주요 5관왕을 석권하며 최고의 화제를 불러 모았던 ‘트리비사’도 ‘십년’과 똑같은 상황을 맞았다. 시상식 장면을 생중계하던 중국 본토의 일부 웹사이트는 중국의 부패를 묘사한 ‘트리비사’가 최우수 작품상을 받는 장면을 차단했다. 중국 매체는 수상자 명단에서 ‘트리비사’를 삭제해 수상자가 어떤 작품으로 상을 받았는지 알 수 없도록 했다.

영화는 1997년 이후 홍콩영화의 질서 속에서 거의 실종됐던 ‘홍콩성’을 다시 한 번 소환하고 있다. 사실상 홍콩반환 이후 홍콩성을 보여주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에서 홍콩의 우울한 정서를 액션 장르에 담아 보여준 ‘상성: 상처받은 도시(Confession Of Pain, 2006)’와 무간도(Infernal Affairs)시리즈는 더 이상 홍콩영화를 기대하지 않았던 영화계에 새로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97년 이후 대부분의 홍콩영화계가 중국 대륙행을 선택함으로써 홍-중 합작영화가 제작되는 상황에서 홍콩성을 담지한 영화제작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두 영화의 감독인 류웨이창(劉偉强)과 앨런맥(麥兆輝)은 홍콩반환 후에도 여전히 불안한 홍콩인들의 삶을 드러냄으로써 영화가 역사와 현실을 반영하는 예술로 존재해야함을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한참 만에 홍콩성은 물론 홍색체제에 대한 강력한 공포를 담은 검은 예언서 ‘십년’이 등장한 것이다.

‘트리비사’는 홍콩의 반환시점인 1997년을 배경으로 홍콩을 주름잡던 3대 잔혹범죄자가 중국 내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남는가에 관한 이야기다. 이들 범죄자가 사회에 적응하는 방식은 불법적인 방식이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모두 표면적으로 돈을 쫓고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은 자신들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 분투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는 홍콩의 반환시기인 1997년을 다시 소환해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반드시 살아남는 속성을 지닌 이들 범죄자들조차 부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로써 홍콩반환 20주년을 맞은 현재적 맥락에서 홍콩반환이 갖는 사회적 의미를 재고하고 있다.

1980, 90년대 홍콩 영화는 자신만의 독특한 색채로 세계의 관중을 사로잡았지만, 지금은 홍콩 시민들이 유일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된 듯하다.

2014년 ‘우산혁명’ 시위를 모티브로 삼고 있는 ‘십년’, 홍콩반환의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하는 ‘트리비사’는 그나마도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고 있다.

“홍콩 배우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홍콩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담을 수 있는 새로운 역할에 계속 도전하겠다.”

올해 홍콩 금상장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램 카퉁(林家棟)의 짤막한 수상소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사진 = 안영은 ACCI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