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수의 변방별곡] 칭기즈칸에 대한 시진핑의 인식

2017-06-05 04:00

[사진=서명수]


서명수의 변방별곡’

칭기즈칸에 대한 시진핑의 인식



칭기즈칸은 중국인인가 아닌가?
인류역사상 가장 광대한 제국을 건설한 정복자 칭기즈칸의 ‘국적’에 대해 새삼 어리석은 질문을 던진 이유는 중국의 역사인식에 대해 의문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칭기즈칸에 대해 중국인들은 위대한 '우리의(我们的)' 칭기즈칸이라며 자신들의 조상으로 당연시하며 자랑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그러나 칭기즈칸을 중국인으로 여기느냐 여부는 중국에서도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케케묵은 논제다. 중국이 미국에 버금가는 세계 최강대국의 위상에 올라선 지금 시점은 물론이고 루쉰(魯迅·1881-1936)마저도 칭기즈칸의 국적 논란에 가세한 적이 있을 정도다.

“···스무살이 되자 ‘우리의’ 칭기즈칸이 유럽을 정복했으며 그때가 ‘우리나라의’ 최전성기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스물 다섯살이 되었을 때 소위 ‘우리나라(중국)의’ 최전성기는 사실은 몽고인이 중국을 정복해서 우리를 노예로 만들었을 때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루쉰의 <随便翻翻>중)

중국은 칭기즈칸을 위대한 중국인의 조상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 중국을 지배한 원(1278~1368) 제국의 역사가 송(宋)나라를 이은 중국왕조의 역사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송-원-명-청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중국의 역사 속에서 비록 몽고족이 중국을 정복해서 세운 원 제국의 역사 역시 엄연한 중국의 역사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면서 1206년 ‘몽고국’을 건설, 원 제국의 기초를 닦아 ‘원세조(元世祖)'로 추앙받은 칭기즈칸 역시 중국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긴 명(明) 태조에 쫓겨 북방 초원으로 되돌아간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북원(北元)‘이라고 칭하면서 원 제국의 명맥을 이어가려고 했지만 결국은 명나라의 국경 내에서 명멸한 하나의 민족국가(속국) 형태에 불과했다는 점과 이후 몽고족이 여러 부족국가 형태로 찢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 제국 멸망 후 칭기즈칸의 후예들인 몽고족이 중국화됐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릴 수도 있다.

그럼에도 엄연한 사실은 ‘칭기즈칸은 중국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칭기즈칸은 시샤(西夏) 원정에 나섰다가 1227년 현재의 닝샤(宁夏)회족자치구에서 사망했고 그의 아들에 의해 중국 정복의 꿈이 완성되었다. 칭기즈칸은 중국인의 입장에서는 ‘정복자’였고, 당시 중국인은 몽고족들에 의해 ‘3등 시민’의 대접을 받는 피정복자였다. 칭기즈칸은 당연히 중국인이 아닌 몽고족의 영웅이었고 변방에서 중국을 침략한 정복자였다. 칭기즈칸을 중국인 스스로 ‘세계를 정복한 위대한 중국인’으로 자랑하는 것 자체가 치욕스러운 과거에 대한 엄청난 왜곡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역사인식도 바뀔 수 있는 법이다. 강대국이 되면 누구나 알고 있는 역사에 대한 인식의 틀이 다소 변화를 겪기도 하는 모양이다.

얼마 전 시진핑 중국 주석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중·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의 인터뷰를 통해 시 주석의 발언이 알려지면서 한바탕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통해 드러난 시 주석의 언급 중 논란이 된 부분은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는 표현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소극적인 반응을 내놓았지만 역사에 무지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천년 동안 한국이 중국의 속국’이었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시 주석 발언의 배경과 의도가 무엇이었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몇 년 전 칭기즈칸의 마지막 원정 과정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시샤(西夏)의 마지막 후예를 만난 적이 있다. 당항(黨項·탕구트)족 고유의 성씨였던 탁(拓)씨는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대뜸 한국을 ‘미국의 식민지 아니냐’고 지적해 당황스럽게 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중 간의 오랜 역사에 대해 설명하면서 ‘한국이 중국의 일부였다’는 식의 표현을 했다면, 그것은 아마도 상당수 중국인들의 역사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오랫동안 중국의 속국 같은 존재였던 한국이 지금은 ‘미국의 절친이자, 혈맹’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불편한 역사인식’을 드러낸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 것과 달리 중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에 대한 역지사지의 입장을 취한 적이 없다. 중국이 북핵문제에 대해 이중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북한을 포함한)한국에 대한 모호하고 이중적이기도 한 역사인식이 작용하고 있다.



작가· 서명수 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