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스페셜]2017년 정유년 중국의 춘제

2017-01-30 13:53
닭의 해 맞아 닭을 소재로 한 춘롄, 촹화, 젠즈 인기
스모그에도 불구하고 폭죽놀이 열기는 막지못해

중국인들은 춘제가 되면 빨간바탕 검은글씨의 춘롄을 대문에 붙여놓는다.[사진=신화통신]


아주경제 베이징특파원 조용성 기자 = 먼 옛날 깊은 산속에 '녠(年)'이라는 괴수가 살고 있었다. 뿔이 하나 달린 괴수 '녠'은 매년 섣달 그믐날이면 마을에 내려와 사람을 잡아먹어치웠다. 공포에 질려 살기를 수 해. 우연히 마을 사람들은 괴수 '녠'이 불빛, 큰소리, 붉은색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사람들은 '녠'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섣달 그믐날이 되면 붉은색 옷을 입고 홍등을 달았으며 붉은 종이를 벽에 붙이고 시끄러운 폭죽을 쏘아올렸다. 그리고는 집안에서 향을 피우고 기도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인 새해 아침에는 집집마다 문을 열고 서로의 평안무사를 축하하고 새해인사를 나눴다. 중국의 춘제 (春節, 설)에 얽힌 전설이다. 지금도 중국인들은 춘제 기간에 붉은색 새해 장식물을 잔뜩 달고, 붉은색 의상을 입고는 가족들과 모여 만두를 빚어 먹고, 폭죽을 쏘아올린다. 그리고 정월 초하루에는 여전히 세배를 한다.

◆춘롄에 등장한 묘일성관

중국은 춘롄(春聯)이라고 하여, 매 해 좋은 문구를 써서 출입문에 붙인다. 단독주택의 대문은 물론 아파트 각 집의 대문에도 춘롄이 걸린다. 보통 붉은 종이에 검은 글씨 혹은 황금색 글씨로 쓴다. 우리나라에서 '입춘대길'이라는 글귀를 쓰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나라는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로 쓰지만, 중국에서는 장례식에만 하얀 종이에 검은 글씨를 쓴다.

춘롄의 글귀는 매년 조금씩 달라진다. 원숭이의 해가 가고 닭의 해가 온 만큼, 올해는 닭을 소재로 한 글귀들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금후사구세, 공송제천대성(金猴辞旧岁, 恭送齐天大圣). 금계제신춘, 래영묘일성관(锦鸡啼新春, 来迎昴日星官)'이라는 식의 춘롄이 눈길을 끈다. 뜻은 '금원숭이가 지난해를 보내니, 제천대성을 공손히 보내드리고, 비단닭이 신춘을 우짖으니 묘일성관을 맞이하자'다. 제천대성은 손오공이며, 묘일성관은 서유기에 나오는 천상계 닭의 화신이다.

짧게는 복(福)이라는 한 글자를 대문에 붙여놓는다. 중국어로 '복이 왔다(福到了)'와 '복이 거꾸로 됐다(福倒了)'의 발음이 같다고 해서 '복'자를 위아래 상반되게 붙여놓는 경우가 많다.

◆가위로 오려낸 붉은색 '복'

춘제가 되면 창문에 촹화(窗花)를 붙인다. 이 역시 붉은색이다. 촹화는 붉은색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만든다. 가정마다 스스로 만들어보기도 하고 상점에서 사오기도 한다. 가위로 오린 장식용 종이를 젠즈(剪紙)라고 한다. 젠즈는 남송시기때부터 전문적으로 만드는 이가 등장했다고 한다. '복'자 주위에 물고기나 복숭아꽃이 배열되는 게 보편적이다.

녠화(年畫)는 춘제용 그림을 뜻한다. 주로 민가의 벽 등지에 장식된다. 서민의 이상이나 생활감정을 표현한 것이 많다. 어린아이나 닭, 물고기가 주요 그림의 소재며, 중국 고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붉은색이 주로 사용되는 녠화는 녠화만의 특별한 분위기가 있다. 즈화(紙花), 화톄(畫帖), 화폔(劃片)이라고도 불린다.
 

한 중국인이 붉은색 종이를 가위로 오려서 만든 촹화를 창문에 붙이고 있다.[사진=신화통신]


◆레스토랑 외식 후 춘완시청

중국인들은 춘제때 교자와 물고기를 먹는다. 한해와 한해가 교체된다는 뜻의 '자오(交)'의 발음과 교자를 뜻하는 자오즈(餃子)의 발음이 같아서 교자를, 그리고 풍년이 들면 생기는 식량의 '여분'이라는 뜻의 '위(餘)'의 발음과 위(물고기, 魚)의 발음이 같아서 물고기를 먹는다. 과거 집에서 요리를 직접 해먹었다면 이제는 소득수준이 높아져서 고급 레스토랑을 찾는다. 춘제때면 중국의 식당들은 그야말로 성업을 이룬다. 식당들은 8.8% 할인을 내거는 마케팅활동을 벌이곤 한다. 중국인들은 대박을 치다는 뜻인 '파차이(發財)'의 '파(發)'자와 음이 비슷한 숫자 8(바, 八)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가족끼리 섣달그믐 저녁에 춘완(春晩)을 시청한다. 춘완은 중국 관영 CCTV의 춘제 축하쇼다. 매년 그렇듯 올해 역시 4시간30분동안 40개 이상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으며, 전국에 생방송됐다. 춘완은 1983년부터 방영되며 한때 최절정의 인기를 구가했다. 이제는 다소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7억명 이상이 시청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스모그에도 불꽃놀이 펑펑

섣달그믐 밤 12시, 설날 새벽 0시면 폭죽놀이가 절정에 치닫는다. 중국의 폭죽놀이는 단체가 아닌 개인이 자비를 털어 폭죽을 사서 터뜨린다. 돈많은 부호의 경우 기천만원대의 돈을 들여 폭죽을 산다. 폭죽놀이는 이날 밤을 새워 이어진다. 생소한 외국인들은 이날 잠을 못이루기 십상이고, 각지에서 폭죽놀이로 인한 화재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이면 온 거리에 폭죽잔해가 수북히 쌓여있고, 매캐한 화약냄새가 여전히 남아있다.

올해 춘제의 경우 중국의 444개 도시에서 폭죽 사용을 금지했으며 764개 도시는 폭죽놀이를 자제토록 했다. 스모그때문이다. 하지만 폭죽놀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폭죽놀이로 인해 베이징의 경우 28일 오후 2시에는 PM 2.5(지름 2.5㎛ 이하의 초미세 먼지) 평균 농도가 647㎍/㎥까지 치솟았다. 베이징시 당국이 단속에 나서 올해 춘제에 베이징 내 폭죽 판매가 지난해보다 4.9% 줄었음에도 폭죽놀이의 열기는 시들지 않았다. 
 

핀테크의 왕국인 중국에서는 세뱃돈(홍바오)를 인터넷 지불서비스를 통해 증정한다.[사진=신화통신]


◆75%, 세뱃돈은 핀테크로

춘제날 중국인들은 세배를 하고 세뱃돈(훙바오, 紅包)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에는 현금보다는 핀테크 세뱃돈이 더 인기를 끄는 것 같다. 알리바바의 즈푸바오(支付寶), 텐센트의 웨이신(微信)페이 등은 훙바오 스마트폰 송금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다. 채팅창을 통해 모바일 훙바오를 보내고, 받는 이가 빨간 봉투모양의 홍바오를 터치하면, 화려한 그래픽이 펼쳐지며, 새뱃돈이 온라인계정에 적립되는 식이다. 새롭고 재밋는 인터넷서비스에 중국인들은 열광하고 있다.

지난 27일 중국판 카톡인 웨이신페이를 통한 세뱃돈 전송이 총 142억건에 달했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76%가량 급증한 것으로 위챗 사상 최고 기록이다. 28일 0시 무렵에는 초당 오간 세뱃돈이 76만건에 달할 정도였다. 중국 대화(大華)은행이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는 전체 중국인의 75%가 현금 대신 인터넷핀테크를 통해 세뱃돈을 주겠다고 답했다. 전년 대비 30% 늘어난 수치였다.

◆춘제때 여행떠나는 중국인

인구대국 중국의 춘제는 엄청난 인구의 이동이 이뤄진다. 중국은 공식적으로 춘제기간 7일을 쉰다. 고향까지의 이동거리가 멀어 귀향에만 1~2일이 허비되는 상황에 대한 당국의 배려다. 하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실제로는 2~3주동안 휴가가 이어진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고향을 가는 오토바이 행렬이 쉽게 목격됐지만, 이제는 대부분의 중국인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국내선 항공편 확충, 고속철 건설 등으로 대중교통이 편해졌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지난 13일부터 춘제대이동(춘윈, 春運)이 시작됐다. 춘윈 특별운송 기간은 내달 21일까지 총 40일간 계속된다. 이 기간에 29억7800만명이 대이동을 할 것이라는 게 교통운수부의 예상이다. 

춘제때 관광을 떠나는 중국인들도 많다. 중국 국가여유국에 설날인 28일 중국 국내 관광지를 찾은 여행객 수는 6520만 명으로 지난해보다 14.7% 증가했다. 춘제기간동안 해외를 찾는 유커 수는 600만명으로 집계됐다.
 

베이징 디탄공원에서 진행된 춘제 먀오후이에 시민들이 운집하고 있다.[사진=신화통신]


◆춘제 인산인해 먀오후이

춘제 첫날부터 약 일주일 동안 베이징시 등 중국 각지에 위치한 불교와 도교 사원에서는 먀오후이(廟會) 행사가 진행된다. 먀오후이는 과거에는 일종의 종교행사로 시작했다. 그러던게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서 노점상인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으며, 경극과 서커스, 각종 민속 공연이 벌어지면서 하나의 춘제문화로 자리잡았다. 올 춘제에도 베이징에서도 과거 황제들의 제사장소였던 톈탄(天壇)공원, 디탄(地壇)공원 등 약 20군데서 먀오후이가 열렸다.

◆소수민족의 정겨운 춘제

중국에는 55개 소수민족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만의 음력을 지니고 있거나, 일부는 종교적인 이유로 춘제를 지니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춘제를 지내며, 새로운 한해의 도래를 축하한다. 장족(藏族)은 장족 특유의 음력을 지니고 있다. 중국의 춘제가 지난 후 며칠이면 장족의 춘제가 다가온다. 섣달그믐 해가질 무렵 오물과 오수를 서쪽에 버리는 의식을 한다. 묵은 때를 지는해와 함께 보낸다는 뜻이다. 설날에 하다(哈達, 흰색 긴 목도리)를 서로 선물하며 행복을 기원한다.

몽고족 역시 한족과 마찬가지로 교자를 먹고 폭죽을 터뜨린다. 설날 아침이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술을 따라주며 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말을 타고 다니며 어른들께 인사를 하러 다니며, 하루종일 술을 계속해서 마신다. 만주족은 홍색, 황색, 파란색, 백색의 네가지 깃발로 부족을 표시하며 춘제때는 각 색깔의 깃발을 빼곡히 세워놓고 춘제 분위기를 낸다. 무슬림인 회족(回族)은 춘제를 지내지 않는다.
 

지난 28일 새벽 홍콩의 폭죽놀이 모습. [사진=신화통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