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닭의 해’ 정유년과 계란공수작전

2017-01-17 10:23

[김진욱 생활경제부장]

‘닭의 해’ 정유년이 밝기 무섭게 대한민국에 ‘계란공수작전’이 한창이다.

조류인플루엔자(AI)로 빚어진 계란품귀 현상에 지난 14일 로스앤젤레스발 대한항공 B747-800 화물기를 통해 미국산 계란 160만개(총 10만kg 분량)가 들어왔다. 앞서 12일에는 3000∼5000개(약 174㎏ 분량)의 샘플용 계란이 아시아나항공 B747 화물기를 통해 한국땅을 밟았다. 개국이후 계란이 이렇게 ‘귀한 대접’을 받은 적이 있었을까.

정부가 나서 이 같은 ‘공수작전’을 지휘한 것도 한편에선 이해가 간다. 그도 그럴 게 지난해 11월16일 시작된 AI 유행으로 전국 산란계(알 낳는 닭)의 3분의 1에 달하는 3100만마리가 살처분됐다. 이후 대형마트에선 ‘1인 1판 판매’라는 웃지못할 풍경이 연출됐고, 일부에선 계란 한판(30개) 가격이 1만원을 넘기기도 했다. 생닭 한 마리보다 계란 한판 가격이 더 비싸진 셈이다.

여파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제빵 업계는 카스테라, 머핀 등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품목을 생산 중단했고 설 대목을 앞둔 가정에선 전이나 떡국 등의 명절음식에 넣어야 할 계란을 놓고 머리까지 싸맸다. 오죽했으면 SNS 등에서는 ‘계란없이 요리하기’가 때 아닌 화제다.

그야말로 사상 초유의 ‘계란 포비아'를 겪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주범은 대한민국의 안전불감증으로 귀결된다. 방역당국의 허술한 농가관리와 비효율적인 유통구조는 물론이고, 우리사회 곳곳에 때가 낀 불감주의가 결국 우리식탁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당초 정부는 AI 확산의 원인을 놓고 ‘여느 때처럼’ 철새를 주범으로 몰았다. 중국에서 AI에 감염된 야생 조류가 여름철에 시베리아나 중국 북부로 가면서 다른 철새와 교차 오염됐고, 이후 남하하면서 우리나라에 오염원을 퍼뜨렸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은 설들력이 떨어진다. 전문가들 역시 철새로 인한 감염보다는 낙후된 유통구조와 방역당국의 허술한 관리가 이번 사태를 키웠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낸다. 

실제 이번 AI는 산란계 농장을 중심으로 발생했는데 이들 농가에 직접 출입하는 계란수집 차량에 대한 방역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현재 계란유통은 생산농가에서 수집 판매상인 도매상이 집란을 하고 중간도매상과 소매상을 거쳐 소비자에게 최종 공급된다. 

농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산란계 농가수가 1060가구인데 반해 식용란 수집판매 업체는 1355개로 농가수보다 훨씬 많다. 따라서 산란계 농가들이 다수의 수집상과 거래하다 보니 AI와 같은 악성 가축 질병의 차단방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또 하나 계란 대란을 지켜보면서 통탄할 일은 정부의 역할부재다. 공교롭게 이번 AI 사태는 한국과 일본에 동시 발생했다. AI감염 신고가 접수된 날은 한국이 11월16일(해남군), 일본은 같은달 28일(아오모리현). 일본은 AI 확진 판정이 나오자 아베 총리가 2시간 만에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하며 진두지휘했다. 시간은 밤 11시. 아베는 농림수산성, 환경성, 후생성 등 각 부처에 즉각 방역지시를 내렸고 12시간 만에 100만 마리를 살처분했다.

반면 우리 정부는 방역 컨트롤타워 부재와 늦장 대응으로 AI 피해규모만 키웠다. 세월호 사태처럼 AI 확산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골든타임’을 놓쳤다. 정부 차원 대책회의가 꾸려진 것은 AI 발생 후 이틀이 지나서였고, 최고 경고단계인 ‘심각’ 경보를 발령한 시기도 AI 발병 한 달 뒤였다. 이 때 이미 살처분 가금류가 1600만 마리를 넘었다. 이후 34일째는 2000만 마리가 도살됐다.

국내에 첫 AI가 발생한 것은 2003년, 즉 무려 14년 전이다. 지난해까지 총 다섯 차례 발생한 AI 방역에만 6200억원의 정부예산이 투입됐다. ‘강산이 변한다는’ 10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의 방역 콘트롤타워는 ‘수리’를 요하고 있다.

일본이 하루도 안 걸린 12시간 만에 방역시스템을 가동해 최악의 사태를 모면한 반면, 우리는 한달 넘도록 방역당국이 우왕좌왕한 탓에 3000만마리가 넘는 닭이 생명을 잃었다. 그 결과로 지금 정부 주도의 웃지못할 ‘계란공수작전’이 펼쳐지고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앞으로 예전과 같은 계란값이 되려면 최소 1년은 걸린다. 무능한 정부 탓에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귀한 계란’을 먹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