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窓] 우리에게 희망마저 없다면?

2017-01-04 18:00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희망'을 상징하는 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이 밝았다. 모두가 새해에는 지난해를 돌아보며 새롭게 꿈을 가지고 각오도 다진다.

하지만 올해는 여느 해와는 다른 듯하다. 긍정적이고 진취적으로 생각하고 의지를 굳게 가질려 해도 갖가지 우려부터 엄습한다. IMF 경제위기 때에도 이러지는 않았다. ‘희망’이라는 말이 한낱 수사(修辭)라는 느낌마저 든다.

실제 여기저기에서 힘들다는 아우성만 들린다. 우리 경제는 시작하려는 의지마저 꺾는다는 ‘희망 불황’의 터널로 빨려 들고 있다.

국민들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해 살아도 현실은 점점 더 팍팍해진다고 푸념들이다. 대기업 총수들의 신년사에도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는 비장하고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대한민국이 처해있는, 희망마저 없을 수 있는 오늘의 경제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희망 불황’의 시대에는 기업들이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실제로 10대 그룹 상장사들이 회사에 쌓아 둔 돈만 550조원대에 달한다. 사상 최대규모다. 서민들 역시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지갑을 열지 않는다. 기업과 가계가 투자하고 돈을 쓸 수 있도록 '희망' 메시지를 보내야 하는 정부는 제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특검 수사, 조기 대선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희망을 논하기는 더욱 어렵다.

경제학 논리대로라면 기업이 투자하고 부자가 돈을 써야 일자리가 창출되고 서민층의 소득이 늘어난다. 하지만 기업들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이재용·최태원·신동빈 회장 등 재벌 총수들의 출국금지로 투자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최순실 게이트' 이후 재벌 등 거대자본에 대한 국민적 실망감도 기업들에겐 부담이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 각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10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를 살펴보면 거대자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심각한 수준임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여론과 조기대선을 의식한 정치권에서는 재빠르게 각종 ‘반재벌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 정책은 불공정한 산업구조를 개편하는 대안일 수 있으나 적지않은 정책들은 촛불 민심에 편승한 포퓰리즘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2일 '보수와 진보 합동토론회'에서 "재벌의 반시장 행위는 가차 없이 처벌하고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법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재벌 대기업 위주의 불공정한 경제구조와 관행을 척결하기 위한 일환으로 공정거래위원회를 경제검찰 수준으로 강화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고, 이재명 성남시장은 "최순실에게 뇌물을 제공한 재벌총수를 구속하고 재벌체제를 해체하자"고 강조했다.

야당의 이같은 움직임에 새누리당도 가세했다. 이현재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대기업 지배구조 투명성과 책임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경제 생태계를 위해 상법·공정거래법의 개정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일각에선 법인세율 인상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벌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고 불공정 거래를 차단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반재벌 정서를 업고 경제원리와 규칙을 무시한 체 마녀사냥식으로 개혁의 물결이 흘러서는 안 된다. 표심을 얻는 정치적 인기영합의 수단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기업을 비호하거나 두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잘잘못을 가리기에 앞서 현실만 놓고 보자는 것이다. 미국과 영국, 중국 등 주요 선진국들조차 법인세 인하와 기업규제 완화 등을 통해 성장동력 찾기에 나섰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 목사는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은 희망이다"고 했다. 지금 우리에게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각계 지도자들이 위기를 기회로 살리는 참다운 지혜와 혜안으로 꺼져가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꿈을 되살려주길 기대해 본다.

김종수 부국장 겸 산업부장 js333@aju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