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의 말...진실 혹은 거짓

2017-01-02 13:36
진실은 간단하다. 거짓으로 포장하려면 많은 말이 필요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


2017년 정유년 새해 첫날부터 박근혜 대통령이 ‘칼’을 뽑아들었다. 최순실 국정농단 조사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탄핵 변론 기일을 앞두고 ‘기습적으로’ 신년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자신에 대한 각종 의혹을 해명하고 나섰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반격’에 언론은 허둥지둥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수첩 외에는 기록할 수 있는 어떤 장치도 허용되지 않은 상황에 처했다. 기자들은 제대로 사전 공지도 받지 못한 채 기습에 억지춘향식으로 참석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 정부가 보여준 ‘졸속’을 여과 없이 보여준 것이 이번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간담회였다. 역대 최악의 대통령 신년 기자간담회로 불러도 좋으리라.

대통령과 기자들과의 대화(?)를 담은 초안을 보는 순간, 무슨 말인지 몰라 오랫동안 글을 읽고 또 읽었다. 그 대목들을 그대로 인용해본다.

“그런데 이번에 일이 터지고 나서 여러분들이 참 많이 힘들어 하시고, 또 걱정도 많이 해 주시고 그런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저로 인해서 여러분들이 힘들게 지금 지내시게 돼서 굉장히 미안한 마음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국민들께도 계속 미안하고, 그런 생각으로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정리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

‘이번 일이 터지고 난 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제대로 된 정보를 얻지 못해 많이 힘들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기자들에게 먼저 미안하고, 무엇보다 국민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지내고 있다.’

이 정부가 출범한 이후 이른바 ‘박근혜 번역기’가 SNS 등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박 대통령이 말을 하면 그대로 알아듣지 못해서 번역기가 필요할 정도라는 비꼼의 상징이 바로 ‘박근혜 번역기’였다.

말과 글은 사람의 생각을 보여주는 수단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청산유수처럼 말을 잘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자신이 말하려는 요지를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지 못하게 되면 평범한 사람들도 지적을 받는다.

국가지도자의 말이 주어와 술어가 빠진 상태로 전달된다면 문제가 많은 것이다. 10차례 진행된 촛불집회 때마다 시민자유발언대가 마련되는데 그 무대에 오른 초등학생에서부터 중고생들의 말은 논리적이고 정확했다. 그런 까닭에 이런 말을 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제대로 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국민들이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박 대통령은 또 이렇게 이야기했다.

“또 한편으로는 저를 이렇게 도와줬던 분들이 사실은 뭐 이렇게 뇌물이나 이상한 것 뒤로 받고 그런 것은 하나도 없고, 그저 맡은 일 열심히 한다고 죽 그동안 해 온 것으로 저는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는데, 실지 또 빤해요. 열심히 일하고, 휴일도 없이 일하고, 그렇다고 뒤로 무슨 이상한 것 받고 그런 것은 없는 분들인데도 어떻게 이런 데 이렇게 말려 가지고 여러 가지 고초를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많이 마음이 아프고 그래서 요즘은 미소 지을 일조차도 별로 없습니다.”

자신들의 측근들이 줄줄이 검찰과 특검에 구속되는 것에 대한 반박을 한 대목인데 이 말도 이렇게 요약이 가능할 것이다.

‘저의 참모들은 검찰이나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뇌물을 받지 않고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들이 지금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어 제가 마음이 아프다’

이 말은 또 어떤가?

“그러나 이렇게 다른 뭐랄까, 보도라든가 소문, 얘기, 어디 방송 나오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많은 왜곡, 오보, 거기에다 허위가 그냥 남발이 되고 그래 갖고 종을 잡을 수가 없게, 어디서 어디까지가 사실인가, 또 보면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조금 있다 보면 ‘아니 그것도 사실이 아니었어’ 이런 식으로 가서 홍보실에서 이렇게 하다가는 한도 끝도 없겠다고 그래 갖고 청와대 홈페이지에 오보 바로 잡습니다 해 갖고 했는데 그것도 다 못 잡고, 지금 있는 것만 해도 수십 개이고, 아마 다 합하면 셀 수 없이 많을 겁니다. 그게 굉장히 혼란을 주면서 또 오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왜곡된 것이 나오면 그걸 또 사실이라고 만들어 갖고 그걸 바탕으로 또 오보가 재생산되니까 이것은 한도 끝도 없는 그런 일이 벌어져서 참 마음이 답답하고, 무겁고 그런 심정입니다.”

이 말은 이렇게 간단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서 사실과 다른 보도들이 많았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노력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그래서 저는 답답하다.'

박 대통령은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좀처럼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을 하기 힘든 말을 이어갔다. 인용은 이쯤에서 접겠다. 여기서 드는 의문은 청와대 출입 기자를 대상으로 한 대화에서도 이런 종잡을 수 없는 언어가 난무했는데 외국 정상을 만나서 한 이야기는 어떻게 말을 했는지 새삼스럽게 궁금해진다. 통역자들의 노고가 컸을 것이다. 검찰의 수사에 결정적인 증거자료가 된 정호성 전 청와대 비서관의 녹취록을 조금씩 이해를 하게 된다.

진실은 간단하다. 그래서 긴 말이 필요가 없다. 거짓으로 포장하려면 많은 말이 필요하다.

[박원식 부국장 겸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