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로봇, 소리' 이성민, 주연배우의 마음

2016-01-22 17:08

영화 '로봇, 소리'에서 10년 전 실종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아주경제 최송희 기자 = “어깨에 부담감이 그득”하다. 숱한 무대와 카메라 앞에 섰던 그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라고 한다. 그의 연기경력이며 카리스마, 연기력이면 무서울 게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이를테면 주연배우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는 그. 영화 ‘로봇, 소리’로 단독 주연을 맡게 된 배우 이성민의 이야기다.

영화 ‘로봇, 소리’(감독 이호재·제작 영화사 좋은날 디씨지 플러스·제공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 개봉 전, 아주경제와 만난 이성민은 수능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처럼 초조하게 관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는 10년 전 실종된 딸 유주(채수빈 분)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 해관(이성민 분)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을 만나 딸의 흔적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로봇, 소리'에서 10년 전 실종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이게 주연이 되니까 현격하게 차이가 나네요. 그 무게감이 장난이 아닌 것 같아요.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어요. 특히 언론시사회 날 무척 떨었어요. (이) 희준이가 깜짝 놀랄 정도요. 처음으로 공개하는 자리기도 하고, 여러 부담이 느껴지더라고요. 압박감이나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함께 17년을 알고 지냈다는 이희준까지 낯설어할 정도였으니. 이성민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었는지는 덧붙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첫 단독 주연작인 만큼 걱정과 애정이 많을 수밖에 없었던 ‘로봇, 소리.’ 그는 시사회 이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디테일”에 자책하기도 했다.

“소리의 목소리 연기를 한 (심) 은경이가 연기를 변주할 줄 몰랐던 거죠. 소리를 하나의 생명체로 인정한다고 했지만, 그 변화나 톤에 대해 상상을 하지 못한 거예요. 그런데 영화 완성본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말과 말 사이에 변화, 톤, 호흡이 있더라고요. 아, 왜 미처 이걸 알지 못했을까 했어요. 미리 알았다면 더 교감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영화 '로봇, 소리'에서 10년 전 실종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극중 세상의 모든 소리를 기억하는 로봇 '소리'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그가 아쉬움을 느끼는 것은 바로 ‘교감’ 때문이었다. 현장에서는 스태프들이 소리의 대사를 대신 해줬고 홀로 소리의 목소리나 사이, 톤 등을 계산하며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로봇과 연기를 한다는 것에 대한 어려움”은 적었다. 바로 이성민이 연기한 해관이라는 캐릭터 때문이다. 극 중 해관은 평범한 중년이자 가장으로 딸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인물. 이성민은 “그냥 기계를 본 중년의 남성처럼 반응하면 됐다”고 말했다.

“기계를 사람처럼 대하는 게 아니라, 기계를 기계처럼 대하다 보니 연기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어요. 소리와의 감정 교류도 움직임보다는 소리의 메시지를 듣고 생기는 감정이었으니까요. 특히 소리와 동작으로 호흡을 맞추는 건 재밌는 작업이었어요. 제가 슬리퍼로 소리를 때리고, 소리가 뒤로 넘어가는 장면들은 조작과 액션이 잘 맞아떨어져서 나온 거죠. 실제 웃음이 터진 적도 있어요.”

이성민은 해관이라는 인물을 조금 더 친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도록 노력했다. 평범한 우리네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성민의 해관은 평범하기 때문에 더 뭉클하고, 더 코믹한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웃음이라는 게 그래요. 웃기려고 하면 웃기지 않거든요. ‘로봇, 소리’를 보고 관객들이 재미를 느끼려면 감정이입을 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해관은 관객의 눈, 관객의 입장이 되려고 했어요. 보편적인 관점에서 소리를 대하려고 했고 그러다 보니 웃음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보수적이 아저씨와 엉뚱한 로봇이 소통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죠.”
 

영화 '로봇, 소리'에서 10년 전 실종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스스로 해관과 닮은 점이 많다고 표현하지만, 이성민은 후배들과 딸에게 ‘친구’ 같은 존재다. “해관과는 달리 딸과 친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그는 시종 후배들과 딸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으며 웃었다.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조연으로 출연했던 류준열, 곽시양과 제 딸 유주(채수빈 분)까지. 이렇게 잘 성장해줄지 몰랐죠. 그땐 사실 잘 모르는 애들이었는데 지금은 워낙 유명해졌으니까요. 세 사람 덕분에 관객들이 관심을 가져줘서 고마워요.”

후배들을 보면 애틋한 마음이 드는 선배. “내성적인 성격으로 촬영현장에서 한마디 말도 못하던 과거의 모습이” 생각나 촬영현장의 후배들에게 한마디씩 붙여보곤 한다는 그. 그 따듯한 배려 때문인지 임시완, 이희준, 전혜진, 이선균 등 이성민과 호흡을 맞춰온 후배들은 하나같이 이성민에 대한 칭찬과 존경을 표현한다. “후배들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하고 묻자 “편한가 보죠”라며 웃어버린다.

“전 편한 게 좋아요. 후배들과도 그렇고요. 제가 사실 어린 배우들을 잘 돌보는 편이거든요. 제가 워낙 낯가림이 심해서 단역 배우를 하던 시절에 정말 힘들었거든요. 온종일 말을 안 해서 입에서 단내가 난 적도 있어요. 그런 모습들이 생각나서 후배들을 더 잘 챙기려고 하죠.”
 

영화 '로봇, 소리'에서 10년 전 실종된 하나뿐인 딸 유주(채수빈 분)를 찾아 헤매는 아버지 '해관' 역을 열연한 배우 이성민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


“경상도 남자라서 무뚝뚝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그는 후배들을 따듯하게 돌아보고,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도 인색지 않았다. 특히 극 중 아내 역으로 출연한 전혜진에 대해 고마움을 표현하며 “극진히 모시고 싶었다”고 한다.

“혜진이와 선균이는 그 아이들의 20대 초반부터 연애하던 모습, 지금 두 아이의 부모가 되는 모습까지 다 봐왔어요. 친한 정도가 아니죠. 그런 친구들과 작품에서 호흡을 맞추면 기분이 좋죠. 특히 헤진이 같은 경우는 막 ‘사도’로 인기몰이를 할 때여서 함께 작품을 하자고 제안했을 때 조마조마했어요. 사실 주연이 되고 나면 캐스팅에 대해서도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누구에게 대본이 갔다고 들었는데 그쪽에서 대답을 늦게 해주면 ‘혹시 나 때문인가’ 싶어서요. 그런데 혜진이가 얼마 나오지도 않는 역할을 해준다고 해줘서 고마웠죠.”

“주연 배우질 같아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 했다”고 덧붙이는 얼굴에 멋쩍음이 가득했다. 아주 작은 것, 세세한 것까지도 고려하고 배려하는 모습에서 후배들이 그를 따르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로봇, 소리’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버지로서 해관에게 느끼는 감정이나, 꿈을 찾아가고자 아버지와 싸움을 벌였던 모습까지. 저와 비슷한 점들이 많았어요. 저 역시 연극을 한다고 아버지와 갈등도 많았거든요. 결국, 제가 잘되고 사람들이 저를 알아봐 주는 모습을 못 보고 돌아가셨어요. 그게 아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