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7.27로 살펴 본 자유대한의 현대사
2015-07-10 10:59
7월 27일은 우리나라의 현대사에 있어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날이다.
37개월 간 지속된 6․25를 잠정적이나마 그치게 한 ‘정전협정’이 있었던 날이고, 그로부터 비롯된 한미의 맹방관계의 상징일이기도 하며, UN 16개국 용사들이 세계의 평화와 대한의 안위를 위해 대한에 참전한 사실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즉 대한민국의 최대 시련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의 기반을 마련하며, 미래 대한민국의 지향점을 제시함으로써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사실상 재탄생시킨 점에서 7월 27일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겁고 크[重且大하]다고 하겠다. 이에 아래에서는 자유대한민국의 본격적 시작을 상징하는 7․27의 중차대성을 간략히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선 언급할 7․27정전협정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최대 시련과 그 극복을 상징한다. 6.25전쟁 폐해로 집계된 수치에 의해서도 170만 여의 사상자가 발생했고, 천문학적 수준의 물질적 비용이 소진됐으며, 국가 기반시설도 전소되다시피 하였다.
한편 이를 잠정적이나마 멈추게 한 7․27 정전협정은 그 자체로서 6․25전쟁 극복의 첫 걸음이었다. 또한 정전협정은 대한민국의 국체로서의 자유민주주의․국체의 수호를 위한 안보․국가보위를 위한 호국보훈 체계의 정립 등 전쟁기간동안 절감한 전쟁극복의 정신적 과제를 하나하나 실현해 나가는 전기가 되었다.
다음은 7․27 정전협정과 맞물려 맞이한 한미동맹에 관한 내용이다. 사실 1953년 8월 9일 가조인된 한미동맹의 근간으로서의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이듬해 11월에서야 정식 조인되어, 일견 7․27과는 무관해 보인다.
하지만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이 사실상 불가피했던 휴전으로 추후 예상되는 필연적인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포석인 점, 불완전한 전쟁 종결의 대가로서 추진된 점, 7․27 이전에 조약의 내용을 사실상 결정한 점을 고려하면 본 조약에서 비롯된 한미동맹은 사실상 정전협정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한미동맹이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의 근간이 되었음은 주지하는 사실이다. 유사 시 69만의 미군과 5개의 항공모함 전단, 2천여 대의 전투기가 자동 동원되는 체제 하에서 북한의 정전협정 파기는 불가능하며 이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냄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언급할 7․27의 상징성은 『참전유공자 예우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 제4조의 2에 의거 2013년 7월 26일 부로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UN군 참전의 날’로서 번영 대한민국의 연원과 그 미래에의 지향점에 관한 것이다. 개전 이틀 만에 참전한 미군을 비롯해 16개국의 참전군은 국군과 더불어 자유민주주의와 세계평화의 수호자로서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사에도 널리 기록되어 길이 전해져 마땅한 족적을 남겼다.
이를 기념하기 위한 국가기념일의 제정은 대한민국 물질적 번영의 연원에 60여 년 전 16개국의 참전이 있었음을 돌아보고 그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또한 UN참전국과의 맹방관계를 공고히 함으로써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한 국제보훈 기반을 마련하여 세계평화와 자유민주주의를 선도해 나갈 대한민국의 입지를 다진 것으로도 볼 수 있겠다.
결국 7․27 UN 참전의 날 제정은 국제보훈으로서 대한민국이 그 물질적 번영에 상응하는 정신적 번영의 길로 들어섰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7․27은 1953년의 정전협정, 한미동맹의 시작, UN 참전의 날 등 대한민국 현대사를 구성하는 굵직한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다. 정전협정은 현대사의 시련과 그 극복을 의미하고, 한미동맹은 대한민국의 안보․번영의 기반마련을 상징하며, UN 참전의 날 제정은 대한민국의 정신적 번영을 위해 국제보훈을 통한 대한민국의 미래상을 제시한 것이다. 다만 위의 논의는 자유대한민국을 사실상 재탄생시킨 7․27을 구성하는 세 사건의 상징성만을 간략히 살펴본 것으로, 그 각각에 대하여는 추가적인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