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통행정이 부른 비극…순천시청서 분신한 민원인 결국 숨져

2013-12-22 13:44

20일 오전 전남 순천시의 민원처리에 항의하며 분신을 기도한 민원인 서모(43)씨가 지난 5월께 순천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모습


아주경제 장봉현 기자 =  전남 순천시의 민원처리에 항의하며 분신을 기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온 민원인 서모(43)씨가 21일 오전 서울 화상전문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서씨는 지난 20일 오전 11시 45분께 순천시 장천동 순천시청 현관 앞에서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어 불을 붙인 뒤 청사 1층 로비로 뛰어드는 등의 분신을 기도해 온몸에 중화상을 입었다.

문제는 서씨가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하면서 순천시에 항의하려고 했던 부분은 앞으로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숨진 서씨는 지난 2008년부터 순천-벌교 간 국도변에 있는 자신 소유의 토지에 주요소와 가스 충전소, 매점, 농가주택 등을 짓겠다며 허가를 냈지만 번번이 불허됐다.

시는 서씨 소유의 토지가 '연접지 개발 제한, 우량농지 보존가치가 높은 토지'라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이에 서씨는 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4년여 가량 힘겨운 법정투쟁을 벌이는 등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고인은 자신이 신청한 사업지와 동일한 단지 내에 이미 허가가 난 다른 공장과의 형평성을 문제 삼으며 시 행정에 강한 불만을 표출해 왔다.

순천시는 소송과정을 통해 시의 행정이 적법한 절차였다는 입장이지만 고인과 유족 측은 "순천시가 행정소송 과정에서 중대 서류를 숨기고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아 패소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해 왔다.

실제 숨진 서씨는 지난 5월 순천시의회 행정자치위원회 상임위에 출석한 자리에서 "순천시 담당 공무원들이 일관성 없는 행정을 했다"며 "시는 우량농지를 보존해야 한다고 했는데 내 판결 이후에도 계속 허가가 났다. 이는 순천시의 재량"이라고 주장했다.

고인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법원 판결이 문제가 아니라 재판과정에서의 공무원들의 서류은폐, 거짓말, 무시와 모멸감, 그들의 태도에서 오는 분노와 억울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내가 시청에 가서 휘발유를 끼얹고 죽어야지 억울함이 풀어지겠냐"면서 분신을 암시하는 발언을 수차례 해 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은 22일 고인의 빈소를 찾은 조충훈 순천시장에게 "고인을 우롱한 공무원들을 강력 처벌해 달라"고 요구하는 등 시 행정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분신 사태를 계기로 순천시의 인ㆍ허가행정 전반에 대한 문제가 쟁점으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순천시는 전날 열린 긴급 간부회의에서 분신 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담당 국장을 대기 발령하고 관련 공무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기로 하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시는 "어떤 경우에도 발생하지 말아야 할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며 민원인에게 충분히 이해를 시키지 못한 점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다.

시는 또 법적 문제도 중요하지만 소통행정의 근본이 부족했음을 질책하면서 전 부서에 소통부족으로 말미암은 유사한 민원사례가 없는지 전반적인 점검으로 재발 방지에 나서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