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판' 같은데? 안젤름 라일리 "내 작품 관찰자 의지가 중요"
2013-12-02 17:39
베를린 스타작가..국제갤러리서 31일까지 개인전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 =쓰레기장이 따로없다.
어두운 전시장 구석 바닥에 공업용 부품, 건축자재, 부서진 액자, 아크릴 유리 파편, 반짝이는 네온 같은 더미들이 아무렇게나 쌓여 있다. 벽에는 아무 생각 없이 캔버스 위로 물감을 흘려 부은 것 같은 회화와 형광색 투명한 아크릴 상자처럼 보이는 액자 안에 알루미늄 포일을 구겨 넣은 평면 작업이 걸려 있다.
전시장 문을 여는 순간 "이게 무슨 미술?" 절로 반문하며 혼란스럽게 한다. 한마디로 '공사판'같은 전시다.
전시제목은 '왓 어바웃 러브(WHAT ABOUT LOVE)'. 미국의 전설적인 록밴드 '하트'의 동명 히트곡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가는 혼돈스럽고 감각적인 요소들로 가득 찬 설치작업을 통해 스펙터클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전시공간 바닥에 널린 설치작품(?)은 서울 인근에서 찾아낸 오래된 공업용 부품이나 차량 폐자재 및 건축자재들이다. 또 부서진 액자들과 네온튜브들은 작가가 베를린 스튜디오에서 가져왔다. 라일리의 대표적인 재료들이라고 한다.
쌓이고 뒤섞인 고물상같은 작품들은 일명 '바로크 풍'을 차용했다. 르네상스 양식에 비하여 파격적이고 감각적인 효과를 연출, 작가의 경험과 시점에 따라 순수한 재료적 특징이 드러나도록 했다.
대체 작가는 왜 이런 작품을 할까.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내 작업을 감상하는 데에는 작품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의지가 가장 중요다. 관찰자가 무언가를 볼 의지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는 "작가는 작품을 통해 계속 새로운 문제제기를 할 뿐이고 관찰자가 적극적으로 작업을 관찰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명 세계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소재로 사용한 것은 쌓여 있는 쓰레기들의 미학적이고 예술적인 의미를 생각했던 것이지 환경생태학적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려 한 건 아닙니다."
거창한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개념미술이니 따지지 말고 쓰레기 더미처럼 보이는 그대로 그냥 느껴보란다. 버려진 일상의 오브제가 모여 만들어내는 시각적 이미지와 관람객 자신만의 내면의 반응에 몸을 맡겨보라는 이야기다. 반짝이는 네온에서 어떤 추억이, 어떤 기억이 전달될지 모른다.
국내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작가는 독일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스타작가다. 21세기 대중사회와 소비시대를 은유하고 비트는 작품으로 유럽을 무대로 존재감을 발휘했다.
프랑스 그르노블 르 마가젱 국립현대미술관의 <울트라코어(Ultracore)>(2013), 베를린 쉰켈 파빌론의 <도둑맞은 판타지(Stolen Fantasy)>(2012), 덴마크 우셰이에 위치한 아르켄 근대미술관(2011), 벨기에 돈트-데넨스 미술관(2010), 독일 튀빙겐 쿤스트할레(2009)에서의 전시했다.
그의 작품은 퐁피두센터, 아르켄 근대미술관, 삼성 리움미술관과 같은 주요 미술관은 물론 다임러 크라이슬러, 크리스찬 보로스, 프랑소와 피노, 루벨 패밀리 컬렉션 등에 영구 소장되어 있다.
미술, 어려운게 아니라지만 웬지 골치아픈것 같은 건 보는 훈련이 안됐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찮기짝이 없던 사물들의 반격이다. 쉽게 이해하기 힘들지만 라일리의 ‘발견된 오브제’들은 전시장에 들어와 통속을 벗어났다. 예술로 치환돼 우리가 버리고 잊히는 일상의 경험을 환기시킨다.전시는 12월 31일까지. (02)735-8449.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하는 주류 미술계가 형상회화를 추구하며 학파를 형성하는 것을 거부하고, 당시의 미술계의 시류를 벗어나 바넷 뉴만, 엘스워스 켈리 등의 추상화가들의 작업에서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세계를 확립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