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9, 벤처 르네상스-2> "제2의 벤처붐, 거품은 빠졌다"

2013-12-03 06:01

아주경제 정치연 기자 =벤처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인식되던 1990년대 말. 기업 투자가들 사이에서 벤처는 가장 큰 화제였다.

벤처 기업이 주도한 인터넷 산업은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면서 우리나라는 '인터넷 강국'이라는 신화를 창조했다. 특히 벤처는 인터넷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

엔씨소프트, 한빛소프트 등의 게임업체와 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 등 보안업체, 옥션과 G마켓 등 전자상거래업체,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업체는 대기업 중심의 우리나라 경제에 새로운 성공사례로 자리 잡았다.

인터넷 업계가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벤처 기업의 숫자(정부 인증 기준)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1998년 2042개에 불과했던 벤처는 1999년 4934개, 2000년 8798개로 매년 100% 가까이 늘었다. 

벤처는 기업의 조직 문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상황에 따른 신속한 업무 처리와 상황 대처 능력은 대기업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까지도 더 빠르고 슬림해졌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벤처 기업의 도전정신이나 기술 개발보다는 어떻게든 주가를 올려 대박을 터트리려는 '무늬만 벤처'인 기업이 늘어나면서 '묻지마 투자'로 인한 피해도 점차 심각해졌다. 

당시 정부가 추진했던 벤처기업 육성책은 우수한 기술력 확보에도 자금 부족으로 위기에 몰린 벤처기업들을 키워냈으나, 무리한 지원책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일부 벤처기업은 정책 자금 지원이나 코스닥 등록을 통해 '돈만 벌면 된다'는 잘못된 길을 택했고, 이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투자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정부 부처별로 경쟁적으로 내놓은 벤처기업의 육성책이 낳은 후유증이 심각했다. 1998년 5월 제정된 벤처인증제도는 벤처기업으로 지정된 업체에 각종 정책자금을 제공하고 법인세와 지방세까지 감면해줬다. 2000년 중소기업청은 벤처기업 지원예산에 4조원을 쏟아 부었다.

이러한 퍼주기식 지원책은 일부 벤처 투자자와 기업가들의 먹잇감이 됐다. 코스닥의 전성기였던 1998년부터 1999년 초. 단기 차익을 노린 일부 벤처기업은 돈을 만들기 위해 정관계를 상대로 로비를 펼쳤으며, 금융 사기로 시장을 오염시켰다.

이는 모두 벤처의 성공할 확률이 1% 내외라는 시장 원리를 무시했던 결과다. 벤처 육성책의 실패를 계기로 투명성 제고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무조건 벤처기업의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건실한 벤처기업을 육성하자는 의견에 힘이 실린 것이다.

벤처의 거품이 빠지면서 최근에는 계열사나 사업부를 분리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분할해 새로운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SDS의 사내벤처로 시작한 데이터 소프트웨어(SW) 보안업체 파수닷컴은 코스닥 상장을 통해 보안 취약점을 찾아주는 소프트웨어 보안 사업과 클라우드 서비스 사업에 진출하고 해외 시장까지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 파수닷컴은 매출액 203억원, 영업이익 40억원, 당기순이익 43억원을 기록하며 기업용 문서보안 솔루션 분야에서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대기업의 주요 모바일 서비스도 속속 벤처로 돌아가고 있다.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급변하는 외부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다.

SK커뮤니케이션즈는 최근 자사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싸이월드와 카메라 SNS 애플리케이션 싸이메라의 분사를 검토하고 있다. 벤처에서 시작한 싸이월드가 대기업을 거쳐 다시 벤처로써 부활을 모색하게 된 것이다.

앞서 네이버는 캠프모바일이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모바일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다. 캠프모바일이 선보인 지인 기반 SNS 밴드와 모바일 론처 도돌런처 등은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2의 벤처 붐을 위해선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는 벤처 창업 생태계 환경을 개선하고, 실패한 벤처에도 재도전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병표 비전드림컨설팅 대표(경영학 박사)는 "벤처 창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은 투자자금 조달이지만, 현재 창업자들은 자금을 정부 지원이나 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부와 대기업이 주도하는 벤처캐피탈보다 개인 투자자가 주도하는 민간 벤처캐피탈이 늘어나야 전체 시장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대표는 "외국의 경우 실패한 벤처라도 창조적인 아이디어와 기술력이 있다면 다시 한 번 기회를 준다"며 "실패의 요소를 명확히 분석하고 재도전한다면 벤처 창업의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