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률, 평양에 과기대를 세운 이유는…“물처럼 흘러왔다”

2013-08-21 17:40

이승률
아주경제 김은하 기자= 건설업으로 성공한 한국인 사업가가 불현듯 교육 분야에 발을 들였다. 북한 주민과 조선족들을 위해서다. 평양과학기술대학 대외부총장인 이승률 박사의 이야기다.

이 박사는 1990년 첫 중국여행에서 김진경 현 옌볜과학기술대학 총장이 양상쿤 전 주석의 아들 샤오밍에게 “사재를 털어 조선족을 위한 기술전문대학을 세우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사회적 정의에 대해 고뇌하던 젊은 날을 잊고 어느새 내가 세속적 삶을 살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이 박사는 김 총장과 뜻을 함께 하기로 했다. 두 사람은 조선족 인재 양성을 위해 1992년 9월 옌볜과기대를 개교했다. 이 박사는 “개교 20년을 맞은 옌볜과기대는 중국 정부가 선정한 100대 중점 대학으로도 선정됐고, 취업률도 100%를 자랑한다”며 웃음 지었다.

옌볜과기대가 이룬 성공에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움직였다. 2001년 2월 김 위원장은 “사회주의 체제에서 성공한 옌볜과기대 같은 대학을 평양에도 세워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북한 유일의 사립대이자 국제대학인 평양과기대가 탄생했고, 평양에서 미국 하버드대 출신의 교수가 북한 학생에게 영어로 MBA 강의를 하게 됐다. 현재 평양과기대에는 17동의 건물에서 학부생 500명, 대학원생 150명이 외국인 교수들 65명 밑에서 학구열을 올리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평양과기대를 “평양의 고립된 젊은이들에게 국제화 기회를 열어주는 모험”이라고 소개했다.

“내년이면 평양과기대 1회 졸업생들이 배출된다. 조선족과 북한의 인재들이 국제사회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면 남북관계에 제 3의 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후에도 이 박사는 교육자금 400억원 모금에 앞장섰고, 어떠한 물질적 보상 없이 평양과기대를 위해 일하고 있다. 이에 그는 “큰 돈을 기부해도, 월급을 받지 않아도 마누라가 싫은 내색 없이 잘 참아줘 가능했던 일”이라며 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인 아내 박재숙씨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평양과기대 설립에 있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중국 업체를 선정한 것을 꼽았다. “그간 얼마나 남북관계에 위기가 많았나. 한국 업체를 선정했으면 학교 완공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이런 일을 겪으면서 문득 남북관계에 중국이나 일본을 통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북아공동체연구재단을 설립했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모든 것이 물처럼 자연스럽게 흘러왔다고 했다. “사업을 하면서 교육자금의 초석을 마련했고, 학교를 지으면서 동북아관계에 대해 고민했다. 큰아들이 고맙게도 아비의 뜻을 따라 의료봉사단을 구성해 중국이나 옌볜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남은 최근 큰 화제가 된 ‘평생 바른 몸 만드는 자세 혁명’의 저자 이상엽씨다.

그는 자신이 이룬 모든것을 “행복프로젝트”라고 칭했다. “생각으로 멈출 수도 있었던 사회적 정의에 작게나마 기여한 기분 들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