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좀 사가세요"…매물 건설사 속탄다

2012-08-21 21:38
쌍용건설 5차례 무산돼 PF규모 절반으로 줄어…시장침체에 건설사 '적신호'

아주경제 정수영 기자= 쌍용건설 매각이 또다시 무산되면서 건설사 인수·합병(M&A) 시장에 비상등이 켜졌다. 시장에 건설업체 매물은 계속 쌓이고 있지만 사겠다고 나서는 인수자가 없어 건설업 전체가 찬밥신세로 전락하는 분위기다.

건설업계와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M&A 시장에서 장기 표류 중인 건설사 매물은 7곳 정도로 아직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비공개로 M&A를 추진 중인 업체까지 포함하면 매물은 10여개에 이른다.

쌍용건설·범양건영·성원건설·신성건설·남광토건·벽산건설·LIG건설 등이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와 있다. 대부분 2~3차례, 많게는 5회 정도 공개 M&A를 추진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이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크면서도 안정적인 매물로 평가받던 쌍용건설은 벌써 5차례나 M&A가 무산됐다. 지난 2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랜드는 쌍용건설을 2400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그러나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우발채무와 인수가격 문제로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 측과 줄다리기를 벌이다 결국 인수 자체가 무산됐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쌍용건설은 지난해 1조원이 넘던 PF 규모가 올해 5000억원대로 줄었고, 올 상반기 해외에서 320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라며 “그런데도 매각이 안된다는 것은 건설시장이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에서는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나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M&A를 추진해온 건설사들이 새 주인을 찾지 못해 결국 법정관리로 직행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벽산건설이다. 벽산건설은 공개 매각을 추진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비슷한 상황에 있던 풍림산업도 결국 법정관리행을 택했다.

우림건설 역시 공개 매각에 실패하면서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남광토건도 대한전선에 매각됐지만 워크아웃에 들어간 이후 재매각이 추진됐다. 하지만 새 주인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이달 초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법정관리 중인 신성건설의 경우 공식적으로만 3차례 매각을 추진했지만 아직까지 주인을 못 찾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초 실시한 본입찰에서 2개 업체가 참여했지만, 주요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지 못해 우선협상대상자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다.

신성건설 관계자는 “채권사들이 최종 결론을 어떻게 내릴지는 알 수 없지만 이달 안에는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 M&A가 이처럼 장기 표류하고 있는 것은 장기 불황에 따른 건설업 실적 저조, ‘승자의 저주’로 불리는 건설사 인수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 등이 주된 이유다.

건설산업의 경우 내수시장이 포화 상태인 데다 주택시장 침체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몇몇 대기업을 제외하곤 대부분 경영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

건설사 인수 후 ‘승자의 저주’에 빠진 사례들도 M&A를 꺼리는 이유다. 금호산업이 2005년 대우건설을 6조6000억원에 인수하는 과정에서 무리한 차입에 따른 부담으로 결국 워크아웃에 들어간 것이 대표적이다.

건설업 M&A 실패를 지칭하는 ‘승자의 저주’는 이외에도 극동건설을 인수한 웅진그룹, 남광토건을 인수한 대한전선, 진흥기업을 인수한 효성그룹 등이 모두 경영 악화에 빠지면서 M&A시장에서 끊임없이 회자돼 왔다.

이복남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M&A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기술이나 상품, 또는 수주 잔고가 있는 매물이어야 한다"며 "하지만 시장에 나와 있는 건설사들은 전혀 메리트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