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세로 자리 잡은 시장경제 시스템은 최소한 세 번의 위기를 겪었다. 1870년대 금융위기와 1930년대 대공황 그리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다. 그 위기의 모습은 오늘날과 무척이나 닮았다. 19세기 금융위기는 2008년을, 대량생산 신기술에 대한 투자 거품이 터지면서 시작된 1930년 대공황은 인공지능(AI) 기술에 열광하는 오늘날이 떠오른다. 과거 두 차례 위기는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극복됐다. '전환'이다. 생명력이 다한 구식 시스템을 새롭게 리셋한 것이다.
두 시기 모두 인류 역사상 혁신적인 기술이 가장 많이 등장한 시기다. 하지만 생산기술의 발전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기술의 장점을 극대화해 줄 생산체계와 사회 운영 시스템이 필요하다. 1차 위기 때는 대량생산 시스템이, 2차 위기 때는 포드식 조립생산 체계가 등장했다. 두 생산체계 모두 장인의 수공업에 의존했던 19세기 중반과 증기공장에 익숙하던 20세기 초반에는 상상할 수 없던 변화들이다. 전기모터를 활용한 조립식 생산 방식에서는 도심에 위치하는 복층의 증기공장보다 교외 지역에 위치한 단층의 넓은 공장이 유리했다. 교외에 공장이 들어서자 도심의 경계가 넓어졌다. 더 멀리 전기가 들어가고, 도로가 생기고, 대중교통이 연결됐다. 교외 지역으로 삶의 터전이 바뀌자 주택 자가 보유 비율도 늘어났다. 1920년 이전 27%였던 자가비율은 1950년 45%로 증가한다.
거주비용이 감소하자 각 가정에 소비여력이 커졌다. 자동차와 가전제품에 대한 소비가 늘어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교육제도의 발전도 빼놓을 수 없다. 1870년대 공장 생산 시스템이 확산되면서 공장 근로자도 최소한의 읽기, 쓰기, 계산 능력을 갖고 있어야 했다. 동시에 이들을 관리하는 행정직과 전문직의 교육 필요성도 증가했다.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대학이 토지를 무상으로 사용해 교육시설을 건설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1870년 6만명가량이었던 대학생 수는 1900년 약 24만명으로 급증한다. '와그너법'과 같은 근로자 권리 강화 법안이 통과된 것도 대공황 시기다. 이 법의 통과로 경기 회복의 과실이 임금의 형태로 분배될 수 있었다.
오늘날의 반도체 경쟁력 우려, 바이오산업의 더딘 스케일업, 조선업 중심 지역의 쇠퇴, 전기차 생태계 부재, 신산업 규제, 지역격차, 글로벌 선도 국가와 규제 격차, 택시로 대표되는 신구 산업의 갈등, 돌아오지 않는 해외 인재 문제 전부 우연이 아니다. 모두 전환이 필요함을 가리킨다. 전환은 어렵지만 우리만큼 문화적·기술적으로 글로벌 선두 국가에 가까운 국가도 없다. 구슬은 나쁘지 않다. 이제는 이를 전환으로 꿰어낼 때다.
현재가 만족스러운 사람들은 전환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성장과 발전을 이뤄왔던 기존 시스템의 생명력이 다해간다. 우리 자녀들이 관계하는 사람들, 또 그들의 자녀들, 친구들이 함께 삶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혼자서 즐기는 현재가 만족스러울 리 없다. 2025년, 전환의 구체적 비전과 국가전략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