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사태에 따른 강달러-약원화에 서학개미들 간에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수익 실현은 물론 환차익까지 보고 있는데 이제 막 미국 시장에 진입한 투자자들은 환차손을 보고 있다. "국장 탈출은 지능 순이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계엄 사태 이후에도 서학개미들은 꾸준히 미국 주식을 매수하고 있다. 계엄령 사태가 벌어졌던 지난 3일 새벽 원·달러 환율은 1440원대까지 폭등했다. 그럼에도 투자자들은 미국 주식을 63억3510만 달러(약 9조712억원)어치를 매수했다.
같은 기간 비슷한 물량의 매도세도 나왔다. 기존에 미국 주식을 샀던 서학개미들은 같은 기간 63억5730만 달러(약 9조1265억원)에 이르는 대규모 물량을 시장에 내놨다.
치솟는 원·달러 환율에 기존 미국 주식 매수자들이 환차익까지 겨냥하고 순매도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현재 미국 주식 수익이 마이너스인 투자자조차도 환차익으로 그 이상의 손실을 메꿀 수 있는 수준”이라면서 “급격히 오른 환율에 지금이 매도 타이밍이라고 보는 투자자들이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은 고스란히 패닉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당시 1442원까지 치솟았다. 이후 4일 1413원, 5일 1417원, 6일 1424원, 9일 1432원 10일 1432.2등 거래일마다 고점에서 거래가 유지되고 있다.
킹달러 현상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당선된 뒤 다시 시작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어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내 비상계엄 사태까지 터지자 원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달러 강세는 더욱 두드러졌다.
한 미국 주식 토론 게시물에서도 투자자는 “몇 년 전에 산 스타벅스 주식 수익률은 -14%인데 환차익은 21%”라면서 “원·달러 환율이 1500원까지 간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현재 물타기 대신 버티기 전략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미국 주식에 들어간 투자자들은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다. 최근 미국 3대 지수는 미국 11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를 앞두고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 시기에 투자한 서학개미들은 환율 부담까지 더해져 더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엔비디아는 중국의 반독점 조사를 받아 3%대 하락했고, 오라클은 실적 부진으로 8% 이상 급락했다.
시장 심리를 안정시키지 못한다면 환율이 1500원 이상으로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11일 “이미 원·달러 환율은 1430원을 상회하고 있고, 당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환율 상승 속도를 다소 완만하게 할 수는 있을지언정 환율 상승 흐름 자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내년 1월을 앞두고 미국의 무역 압박 등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 대응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고, 원화 자산에 대한 신뢰 역시 약화되고 있어 환율은 추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그는 “한국 정치 상황이 조기에 안정되지 않고 장기화한다면 추후 정치 상황이 안정되더라도 금융시장은 계엄 이전 상황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짚었다.